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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에 적힌 숫자, 우아란 사태로 본 난각번호의 비밀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달걀을 엄청 자주 먹습니다.

삶아서 먹기도 하고 프라이를 하기도 하며 달걀말이도 만들죠. 떡국이나 라면에는 항상 넣어 먹습니다. 그렇게 자주 소비하는 달걀을 살 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제품만 사죠.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동물복지로 편안한 환경에서 낳은 달걀이 건강에 조금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습니다.




최근 방송인 이경실 씨가 운영하는 달걀 브랜드 '우아란'이 가격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난각번호 4번 달걀을 30구 기준 1만 5천 원에 판매하면서, 난각번호 1·2번 달걀과 유사하거나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해서입니다. 평소 달걀에 대해 꽤 관심이 많기에 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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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계속 언급되는 난각번호,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난각번호는 달걀 껍데기에 인쇄된 10자리 숫자·영문으로, 처음 4자리는 산란일자, 중간 5자리는 생산자 고유번호, 마지막 1자리는 사육환경번호를 의미합니다.

사육환경번호가 특히 중요한데,

번호 1은 방사(야외 방목),

번호 2는 평사(실내 사육),

번호 3은 개선(확장) 케이지,

번호 4는 배터리(기존) 케이지(마리당 0.05㎡ 수준)를 뜻합니다.


4번은 닭 1마리당 허용하는 공간이 면적 0.05㎡로 가장 좁으며, A4용지 한 장(0.062㎡) 보다 작은 수준입니다. 쉽게 말해, 닭 한 마리가 A4 용지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1에 가까울수록 사육환경이 양호한 데 반해 키우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가기에 달걀 가격도 높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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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난각번호 4번 달걀은 30구 기준 약 7,000~8,000원대로 팔리지만 우아란은 30구 기준 1만 5000원에 팔렸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논란이 커지자 업체 측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고 합니다.


"동물복지란의 비싼 가격은 좋은 환경과 동물에 대한 존중에 매겨지는 것이지 품질 때문은 아니다"라며, "우아란의 판매 가격 기준은 난각번호가 아닌 HU(호우 유닛)라는 품질 단위"라고 주장했습니다.


※ 호우 유닛 : 주로 달걀의 신선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단위, 달걀의 무게와 흰자(난백)의 높이를 측정하여 신선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숫자가 높을수록 신선도가 좋습니다.



또한 강황, 동충하초 등 고가 원료를 급여하고 있으며, 농장 위생·질병관리 등을 통해 달걀 품질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투입되고 있다고 말이죠.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논리적 모순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동물복지 달걀의 높은 가격이 '환경과 존중' 때문이라면, 그 환경과 존중이 없는 4번 달걀은 왜 그만큼 비싸야 할까요? 고급 사료를 먹인다고 한들,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몸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닭이 건강할 수 있으며 건강한 달걀을 낳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 실제로 좁은 케이지 안에서 일생을 보내는 닭의 경우 스트레스나 질병 등의 위험이 다른 방식에 비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윤진현 전남대 교수 연구(2025.02))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료를 먹어도,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의 품질이 동물복지 달걀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방송인 이경실 씨는 지난번 한 유튜브 채널에서 "어린 시절 엄마가 공부를 잘했던 언니에게만 달걀 프라이를 밥에 올려줘 한이 맺혔다"면서 "현재 달걀 브랜드 모델이 됐고, 인터넷 판매 사업도 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한을 풀겠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한 달걀사업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논란이 커지게 된 건 동료 연예인 조혜련 씨가 SNS에 '이경실의 우아란 진짜 달걀 중에 여왕이다. 너무 맛있다'라며 우아란 제품 사진을 게시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홍보는 결과적으로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난각번호를 확인한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였죠.


논란이 확산하자 조혜련 씨는 홍보 글을 삭제했고, 이경실 씨 역시 소셜미디어에 현재 달걀 판매와 관련된 게시물을 모두 내렸습니다. 우아란 판매처인 프레스티지 몰은 2025년 11월 18일까지 정상적으로 접속됐으나, 현재는 '현재 사이트는 준비 중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만 표시된 채 접속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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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명인의 이름값으로 프리미엄을 책정해 왔던 스타마케팅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나 결국 투명성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유명 인플루언서 임블리는 2019년 자신의 쇼핑몰에서 타 쇼핑몰 대비 최대 2배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 폭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죠. 곰팡이 호박즙 사건과 명품 카피 논란까지 겹치며 매출 1,700억 원 기업이 3년간 374억 원 적자(한국경제뉴스)를 기록하고 몰락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유명인의 말만 믿지 않습니다. 이번 사례는 난각번호라는 객관적 지표 하나가 유명인의 화려한 스토리텔링을 압도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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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도 중요하지만 그 품질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아무리 고급 사료를 먹은 닭이라고 해도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있다면, 그 달걀에 대한 신뢰도가 생기기 어렵겠죠.


그리고 스타마케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방식은 소비자들에게 순간의 주목을 끌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신뢰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훌륭한 제품이 되기 위한 조건은 투명한 정보와 정직한 가격, 그리고 소비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한 줄 요약 : 투명한 정보가 화려한 스토리텔링을 이긴 날, 우아란 논란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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