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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Jul 11. 2023

[BIFAN] 자본으로써 얻어지는 인간의 자유

<인피니티 풀> 2023, 브랜든 크로넨버그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드레날린 라이드 - <인피니티 풀>


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

출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미아 고스, 클레오파트라 콜먼 등


시놉시스: 제임스와 엠은 외딴섬 라톨카의 최고급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낸다. 자신의 팬이라는 개비와 그 배우자와 함께 밤을 즐기기 위해 외출하던 날, 제임스는 자동차 사고로 그 지역의 농부를 죽이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라톨카는 폭력과 쾌락, 공포로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첫 장편작 <항생제>부터 <포제서>, 그리고 신작 <인피니티 풀>까지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 세계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특히나 이번 <인피니티 풀>의 경우 <포제서>의 연장선 혹은 심화의 과정에 있는 영화로 보인다. 두 영화를 관통하는 건 '정체성'이라는 테마다. 전작이 타인 의식의 침투에 따른 두 의식의 뒤엉킴을 보여주며 인간 정체성에 대해 묻는 영화였다면, <인피니티 풀>은 한 인간이 뇌까지 모든 부분이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나면서 겪는 수난을 보여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로 느껴진다. 커진 영화의 규모만큼이나 작품 간 3년의 공백 동안 이뤄진 기술의 진보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감독 스스로가 두 영화의 연관성을 인정하며 이번 영화를 <포제서>의 미적 진보라 칭하기도 했다.


아마도 <포제서>를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환각 시퀀스를 보면서 전작의 의식 교차 시퀀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작이 떠오른다는 것이 독이 되는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이 영화의 경우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찍어 색다른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번에도 전작들에서 함께했던 카림 후세인 촬영감독과 작업했는데, 의도적으로 촬영 기술을 포함해 <포제서>에서 사용했던 모든 방식을 완전히 중복되게 사용하지 않았다. 환각 시퀀스는 디옵터와 렌즈 플레어, 다이크로익 필름을 젤 형태로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찍는 카메라의 한계 안에서 이미지를 변형시켜 구현했다. 여기에 더해 환각 장면에 한해 CGI를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장면이 카메라 안에서 이루어졌고, 같은 숏을 다른 버전의 이미지 왜곡으로 여러 번 재촬영해 씬 바이 씬으로 이어 붙이는 식으로 편집했다. 오로지 촬영과 편집 만으로 환각 시퀀스의 비현실적 감각을 구현한 것은 엄청난 작업이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이 영화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카메라를 비틀어가며 비현실적이고 웅장한 분위기를 조성하던 영화는 제임스가 농부를 차로 치는 장면을 기점으로 라톨카 안의 뒤틀린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 규율이 엄격하기로 알려진 라톨카에는 사람을 죽일 시 죽은 자의 장남에 의해 사형을 당해야 하는 법이 있다. 하지만 제임스와 같은 관광객에게는 예외가 있다. 거액의 돈을 낸다는 전제 하에 복제 인간을 통해 처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처형당하는 자는 복제된 자신의 처형을 꼭 직접 봐야 한다. 첫 형 집행일에 13살의 죽은 농부 아들이 나타난다. 복제된 제임스의 복부를 수십 차례 찌르는 그를, 수십 차례 찔려 죽음을 맞는 복제된 자신을 보면서 제임스의 얼굴에 번지는 건 미소다. 자신과 똑같은 외형에 감정과 기억까지 같은 존재가 생긴 것에 혼란스러워하지만, 그 존재의 죽음을 보는 제임스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것만 같다. 처형은 그 기점이 되고, 부자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맛본 그는 경험자들 무리에 껴 범죄행위를 반복한다. 수년간 글을 쓰지 못한 사실상 무명작가이지만 아내 엠의 재력으로 부유한 삶을 영위했던 그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을 건너고야 만다.


이들이 범행을 반복할수록 분명해지는 건 제임스는 이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개비의 유혹에 넘어간 순간부터 제임스 자신은 범행의 짜릿함을 느끼며 상황을 즐긴다 여기지만, 결국 제임스는 개비를 포함한 이들 무리의 놀잇감에 불과하다. 부자에게 호의적인 라톨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은 더욱 잔혹하게 작용한다. 자신의 위치를 늦게나마 깨달은 제임스는 개비 무리에게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만, 개비 무리는 제임스가 도망칠 때마다 그를 붙잡으러 나타나 우롱한다. 벗어날 수 없는 반복의 고리에 발을 들이고야 말았다는 걸 깨달은 제임스에게 남는 것은 결국 무력감뿐이다.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던 인물이 밑바닥으로 추락하며 좌절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영화는 자본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환경에서 일종의 실험을 자처하는 영화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상황에서 최대의 자유를 즐기며 광대를 자처했던 그는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으며 부서지고야 만다. 그렇기에 그의 마지막 모습은 오히려 담담하다. 어차피 누군가의 개가 될 것이라면, 최상위에 서지 못한다면 보다 위에 있는 개가 되는 게 나을 테니까. 작가로서도, 자본주의의 세상 안 뭣도 없는 개인으로서도 제임스는 그렇게 라톨카 안에 자신을 스스로 가둘 수밖에 없다.



세 편의 장편을 아울러볼 때,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 세계는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테마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감독으로서 그는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탐구하며 필요하다면 그 환경을 가감 없이 보이려는 적나라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번 영화의 경우 인물을 내세워 그가 느끼는 비현실적 감각 자체를 관객이 체험하게 만드는 데 영화의 주목적을 둔 듯하다. 이런 방식이 무척 과하게 느껴져 호불호가 갈릴 것이 분명하고, 그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영화를 봤을 때 일관된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는 그의 영화 세계는 그가 아버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갈 감독이라는 기대감을 게 만든다. <인피니티 풀>은 어떤 의미로든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그려낼 그만의 세계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엔 충분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상영일정

6/30 24:00-05:46 부천시청 어울마당
7/2 19:30-21:29 한국만화박물관
7/9 19:30-21:29 부천시청 어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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