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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Dec 20. 2023

자선이 아닌 연대

<나의 올드 오크> 2023, 켄 로치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4), <미안해요, 리키>(2019)에 이은 영국 북동부 배경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기존 무대였던 뉴캐슬에서 더럼의 어느 폐광촌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지역으로 옮겨간 영화는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난민 이주자들 간의 갈등을 다룬다. 켄 로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한 만큼 빠른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들보다도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화법이 두드러지며 그와 대조되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주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소란스러운 다툼 소리를 배경으로 흑백 사진이 연속되는 오프닝부터 영화에서 카메라의 존재감이 종종 눈에 띈다. 시리아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와 마을에 내리고 마을 주민들은 이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을 찍던 야라를 발견하고, 그녀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몰래 꺼내 마음대로 사진을 찍다가 떨어뜨리면서 카메라는 망가트리고야 만다. 꽤나 강렬한 이 오프닝 씬은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 상기시키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격과 기록의 카메라. 피사체는 촬영자의 시선에서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담긴다. 오프닝에서 연속된 사진과 다투는 소리를 통해 우리는 야라의 눈에 비치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야라의 시선에 좀 더 기울어 영화를 보게 된다.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마을 사람 중에서도 난민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펍에 손님으로 와 그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말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나서지는 않는다. 단지 작은 단체 안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같은 것을 챙겨주고 관심 가질 뿐이다. 선한 소시민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일부를 제외하곤 그들 대부분은 난민들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적대시하지만 특별히 그들을 괴롭히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막거나 크게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랬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난민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공적 대화의 공간이자 쉼터였던 올드 오크가 난민들에게도 열리게 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TJ를 비롯해 난민들을 챙겨주는 이들이 탐탁지 않던 이들이었으나 그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TJ가 자신들에게는 빌려주지 않던 펍의 내부 공간을 난민들과 함께하는 행사의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이에 반기를 들고, '올드 오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것이 마을의 뜨거운 화두가 된다. 노동자의 입장에 대해 주로 찍던 사회주의 감독이 난민과의 갈등 속에서 또 다른 약자를 차별하는 노동자의 양상을 그려낸 것은 다소 이례적인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난민 집단 간의 이분법 갈등 구조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켄 로치 감독은 비록 차별하고 적대하는 이들일지라도 결국 잘못된 선택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들의 모습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정부의 난민 수용지는 왜 하필 우리 마을이어야 하며, 우리도 살기 힘든데 당장 나와 관련도 없는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지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난민 수용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갈려 토론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에는 결국 이들의 입장과 사정까지도 이해하도록 만든다. 보통의 사람이 문제에 부딪힐 때, 구조를 따라가며 전체를 파악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내 삶조차 여유가 없어 타인에게 눈 돌리기란 어렵기 때문에 구조의 모순을 바라보기보다 당장 눈앞의 걸림돌을 비난하는  다.



이런 모순은 TJ의 개 마라와 관련된 일화와도 상통한다.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심지어 TJ까지도 그런 결말이 벌어질 걸 과연 한순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흥분했을 때는 주인조차 통제 불가능한 대형견을 불완전한 목줄 하나 채워 돌아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 이를 보며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더 안전한 방식으로 개를 기르는 것이 견주의 의무는 아니다. 국가의 권력과 체제 아래에서 국민은 상대적 약자로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승하는 물가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최저임금, 고용난 등의 최악의 환경에서 약자들은 그들 간 우위를 겨루며 자신보다 취약한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분풀이를 한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는, 어느새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방치하다시피 한 그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화해의 방법은 '연대'다.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연대와 공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선한 인간성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용기를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저항하기.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들도 사회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사회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오면서도 소위 말하는 치트키 장면은 적은 감이 있다. 당장 앞선 두 영화의 가슴을 울리던 장면들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이 영화를 충분히 밋밋하게 느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회 영화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를 지킨 켄 로치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가 마지막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여전히 남아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금 되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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