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 10시 반, 친한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그날 회식이 있었던 까닭에 일찍 잠에 들어 전화를 받지 못했다.
금요일 오후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다. 간만에 내 생각이 나 전화했다는 답변이 왔다. 나는 퇴근 후 18시경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나 : 웬일로 전화를 했대? 장사는 잘 되고?
친구 : 요즘 장사 잘돼, 형 생각나서 전화했지. 별일 없지?
나 : 나야 뭐 맨날 똑같지. 넌 별일 없어?
친구 : 나도 별일 없다.
이후,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친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 형 근데 나 파산신청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 파산? 나도 잘 모르긴 하는데 갑자기 왜 그래?
친구 : 그냥 싹 정리 한 번 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상담사 얘기로는 6년만 열심히 하면 갚을 수 있는 돈이라는데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나는 아직 늦었다고 생각 안 하거든.
나 : 당연하지 인마 지금 나이가 서른둘인데 절대 안 늦었지. 빚이 지금 얼마 남았는데?
친구 : 4천만원.
나 : 같이 한 번 알아보자. 내가 공부 좀 해서 내려갈게.
친구 : 맨날 내려온다 하고 안 오잖아. 그냥 내가 올라갈게. 언제 갈까?
나 : 아냐 진짜 내가 내려갈게 이번에.
친구 : 언제 올 건데?
나 : 한 4월 말쯤 되지 싶다.
친구 : 알았다 형 그때 보자.
예전부터 친구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통화를 끊은 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절대 나에게 먼저 개인사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특히 돈에 관련된 이야기는 더욱 하지 않았었다. 약 2년 전, 너무 높은 이자율 때문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 나의 제안도 한사코 거절했던 친구였다.
토요일엔 파산신청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았다.
파산을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소득과 재산, 가족구성원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 후 자격이 되는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었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이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파산신청보다는 나와 같이 새 출발을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내가 있는 지역에서 함께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딱 4천3백만원이었다.
내게도 큰돈이지만 당장 없어도 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는 돈이었다.
그 돈은 그저 매일 들어오는 이자 3천원을 위한 비상금이었다.
일요일 오전, 평화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벚꽃놀이 계획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던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부고 소식이었다. 자살이었다.
한참을 울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사회의 가혹한 현실이 미웠다.
내 친구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이였다.
그저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군대에서 만난 나를 보며 항상 자기의 멘토라고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가정형편상 군대에서 전역한 후 바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실에 누워계셔야 했다. 얼마 후 친구도 사고를 당해 두개골을 절개해야 하는 뇌수술을 받았다.
지금껏 1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내 친구에게 남은 것은 병로한 아버지와 빚 4천만원이었다.
친구는 군대에 있었던 2년을 포함한 12년 동안 내게 한 번도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너무나 대견했고 멋있었다.
나를 인생의 멘토라고 이야기하던 친구에게서, 나는 역설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돈 4천만원은 사람을 죽게 한다.
4월 1일 만우절날, 그는 장난처럼 가버렸다.
내가 존경했던 그 강하디 강한 사람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았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