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명이었어

by 에메

오늘은 이상하게도
운명이라는 말을 자꾸 떠올랐다.


운명적인 일이 생기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학원 쪽으로 차를 몰던 중,
몸담고 있는 온라인 모임에서 알림이 울렸다.


“운동 숫자를 11로 맞추세요.
빼빼로를 드립니다.”


아침 운동 후 꺼놓지 않았던
나의 와치는 이미 11을 훌쩍 지나 있었다.

에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무의식처럼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뒷좌석에 있던 반쯤 읽은 책들을 챙겼다.

(차 뒷좌석엔 늘 책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읽으려고 둔 책들. 요즘은 기다릴 일이 많지 않아서 거의 안 읽은 책들이다.)

그렇게 무작정 도서관으로 걸었다.

마치 숙제를 하듯
11분 11초를 인증하고
그 순간부터
오랜만에 햇살을 느끼며
동네를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4학년,
작은 아이가 7살이던 시절부터
이 동네는 우리 가족의 시간들을 품고 있었다.


아니,
이 동네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냈다.


같이 밥을 먹던 식당,
같이 걷던 거리,
카페,
미용실—

모든 것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서관에 도착해
책을 반납하려던 순간,
1층 어린이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나

방학 때면

어딘가 갈 수 없는 날엔
아이들과 자주 오던 곳.


심지어

1층 어린이 도서관에서

2층 어른 도서관으로

큰 아이가 올라갈 때


" 우리 딸 또 컸구나! "

서로 축하를 했었다.


때로는 집에서 김밥을 싸왔고,
때로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와
함께 나눠 먹었다.


책을 읽으며
날씨를 이야기하고,
친구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했다.


책을 좋아하던 엄마와 딸은
도서관에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재미난 부분을 서로 공유했다.


딸은 고양이 이야기와 디저트를,
나는 역사와 심리학을.


가끔은 1층 카페로 내려가
서로 역사 퀴즈를 내주고

주말에 만들어 먹을 디저트를 계획하고,
심리학의 신기한 법칙을 딸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엄마 돈 쓴다고
몰래 집에서 커피를 내려
짜잔 하고 건네주던 딸.


오후 출근 시간에 쫓겨

엄마가 먼저 출근하면
본인 학원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씨에나 나왔음”

“씨에나 길 건넘”

계속 보고해 주던 딸.


그 딸이,
우리 예쁜 딸이
모레 수능을 본다.


여느 날 중 하루겠지만,
그냥 목요일이겠지만—


어쩌면
네가 들인 시간,
내가 들인 시간,
그리고 그 장미꽃이
소중하게 느껴질 날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당장은 장미꽃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 시간들은
어떻게든
너에게 소중함으로 다가올 거야.


일주일 전에 빌려 온 책과

1년 전에 가입한 온라인 모임

그리고 길가에서 생각난 여러 가지 추억들


그런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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