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초긍정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분이 오셨다.
가을.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내가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수십 개의 생각들이
바람에 실려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 조각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정의 굴곡선에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유되었다고 믿었던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헤매지만,
올해 가을은
제법 센 놈이다.
그 작은 기쁨들마저
조용히 눌러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냥 너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진짜 신기하게 다 나아졌다.
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단단히 삐치셨고,
빼빼로를 만들던 중3 딸은
사진을 찍었더니
초상권은 자기에게 있다며
지워달라고 한다. (초상권은 빼빼로에게 있는 건 아닐까, 슬쩍 웃음이 난다)
갑자기 모든 게 짜증 난다는 친한 언니,
엇갈려버린 친구와의 약속.
모두가 다 이해가 된다.
이상하게도,
모두가 다 이해가 된다.
너와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마음의 주름이 펴지고,
숨이 고르게 쉬어지고,
가을의 쓸쓸함마저
조용히 따뜻해졌다.
가을이,
너를 데려왔다.
그리고 너는
나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