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관리

수능이 끝난 날, 그리고 그 이후

by 에메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하루는 정말 순식간이었지만,
오후 5시 35분.

시험이 끝났다는 그 시각부터는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잠시 후, 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끝났어.”
“기분은 어때? 힘들지?”

“기분은 좋아! 나 전복 칼국수 먹을래.”
“더 맛있는 거 먹지.”
“아까 시험 볼 때부터 그것만 먹고 싶었어.”


참 귀여운 아이다.
그 단순하고 명확한 욕망이
어쩐지 마음을 놓이게 했다.


“긴장은 안 됐어?”
“응, 오히려 긴장은 안 됐어.

" 그런데 사실… 엄마, 나 며칠 전부터 좀 붕 떠 있었어.”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 긴장될 때는
오히려 감정이 사라진 듯,
무슨 기분인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저, 아 몰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

물론 결과도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그저 기분만 물었다.


잘 봤다면 자랑할 테고,
못 봤다면 미안해할 테니까.
자랑하면 웃어주고,
미안해하면 안아주면 되지.


퇴근 후, 야식을 먹으며 앉아 있는 내 앞에서
딸은 조잘조잘 하루를 풀어놓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활기.
참 좋다.


고3이 되고서는

내가 조심해야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결과 이야기 말고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도 된다!


큰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남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이와 대화가 통하고 난 후,

큰 딸은

나를 엄마가 아니라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혹은 마음이 약한 친구,

처럼 대했다.


나를 지켜주려고 했고

나를 위로하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말투 사이로
시험이 아주 잘 본 건 아니라는 기색이 스친다.


그래도 괜찮다.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삶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12월 10일까지는
기숙사에 있는 아이를 매일 데려다줘야 한다.
솔직히,

조금 귀찮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귀찮거나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데려다주는 길에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



오늘은 차 안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고마워. 나 혼내지 않아 줘서..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싸우고 혼나고 그랬대.”
“왜 싸워?”
“시험 왜 못 봤냐, 수시 원서 왜 그렇게 썼냐…”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싸운다고 뭐가 달라지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에너지를 참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살면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을 때
나는 끝까지 해보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교환하거나 환불받을 때,
누군가의 마음을 돌리고 싶을 때,
결과를 바꾸고 싶을 때,
가능성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물론, 바꾸지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게는

이상하게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남는다.


이혼을 했을 때도 그랬다.
주변에서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이혼하라며
시간을 끌고,
침묵을 하며,

아이들을 이용하라고
밀당을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이 더 중요했다.
빨리,
내 인생의 두 번째 장을 펼쳐야만 했다.


아이의 수능이 끝난 날,
나는 바란다.
우리 아이도
지나간 것들 속에서
질척대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단단하게
구별할 수 있기를.


어쩌면,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름의 이 하루는
‘에너지 구별 능력 시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여느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