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괜찮아지는 사람들
11월 중순의 일요일.
우리 세 모녀는 각자의 하루를 보냈다.
나는 춘천으로,
딸들은 송도로.
서로 다른 목적지였지만
그 하루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서로의 즐거운 순간을 메시지로 나누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즐거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가장 늦게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아빠가 용돈을 주셨는데, 내가 차에서 자다가 내려서 그 돈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잠결에 지갑에 넣었는지,
지갑에 있는 5만 원이 원래 있던 건지,
자기가 넣은 건지조차 헷갈린다고 했다.
돈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울음이었다.
“5만 원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냥 받지 말걸 그랬어…”
나는 달래고 또 달랬지만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내일 아침에 생각하면 좀 나을 거야.”
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큰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내 5만 원을 씨엘 돈인 것처럼 줄까?”
“응?”
“그냥… 돈을 찾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잖아.”
“그래, 그럼 엄마가 줄게.”
“아니야. 내 동생에게 5만 원 정도는 줄 수 있지.”
그렇게 씨에나는 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돌아와 말했다.
“지금은 너무 격해서… 내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는 타이밍까지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날 밤, 작은 아이는 다시 내게 와서 말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칠칠맞을까. 돈이나 잃어버리고…”
“엄마도 잘 잃어버려. 다음엔 잘 챙기면 돼. 그리고 10만 원 안 잃어버린 게 얼마나 다행이야.”
“전혀 위로가 안 돼.”
그 순간, 큰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씨엘! 너 신발장에서 니 돈 찾았어. 거기 흘려 있었더라.”
잠시 적막이 흐르고,
작은 아이가 말했다.
“언니… 안 그래도 돼. 언니 돈인 거잖아. 난 없어도 괜찮아. 그냥 어디 있는지만 알았으면 좋겠어.”
“아니야. 진짜 네 돈이야. 신발장에서 찾았어.”
“아닌 거 알아. 그냥 마음만 받을게. 고마워.”
“아니, 네 돈이라니까…”
끝이 나지 않는 두 아이의 대화.
나는 항상
이런 관계를 꿈꿔왔던 것 같다.
서로를 티 나지 않게 배려하고,
그 마음을 알아채고,
조용히 나누는 관계.
하지만
바쁘고 이기적인 생각들에
그런 마음을 놓치고 살 때가 많다.
오늘 씨에나가 씨엘에게 보여준
그 행동과 말들은
나에겐 너무나 어른스럽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사랑은
완벽한 말과 행동,
정확한 타이밍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울고 있는 동생에게
자신의 돈을 티 나지 않게 내어주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전할 가장 좋은 순간을
고심하는 섬세한 배려.
또는,
어떤 특별한 날을 마주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작은 말 한마디와 행동.
그런 순간들이
우리의 일상을 부드럽게 감싸며
사랑이 가득 찬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채워진 하루는
너무도 따뜻하고,
조용히 행복하다.
“사랑은 마음을 주는 방식이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손으로,
때로는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
그런 사랑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조금씩 쌓이고,
서로의 삶에 스며들면
어쩌면
나도, 너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벌써 한 달 뒤엔 크리스마스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예술의 전당 앞에서 공연을 보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건네는
소박하고도 다정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순간에도
말없이 스며드는 작은 배려들이
어딘가에 조용히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배려,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쁨.
그걸 찾아가는 과정.
그게 어쩌면
살아가는 재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