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즈가 흐르는 교실
학생이 자기소개서를 쓰러 내 교실에 찾아오면, 나는 조용히 재즈를 틀어놓는다.
정해진 변주 없이 흘러가는 음악처럼,
그 아이의 생각도, 말도, 글도 처음엔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좋다.
정답을 찾는 글이 아니라,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글이니까.
나는 그 흐름을 함께 듣고,
때로는 살짝 박자를 잡아주고,
때로는 조용히 기다린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2. 입시의 현장, 이야기의 시작
국제중 — 가장 어린 자기소개서의 세계
국제중 입시는 추첨으로 시작된다.
서류를 추첨으로 거른 뒤, 자기소개서를 제출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이 입시를 도박처럼 느낀다.
열심히 준비한 자기소개서가 단 한 장의 번호표 앞에서 무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자기소개서는 결코 헛되지 않다.
초등학생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
그건 이미 성장이고, 이미 감동이다.
처음엔 우리 아이보다 언니 오빠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나이였는데,
이제는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내 앞에 앉는다.
그 모습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경이롭다.
특목·자사고 — 방향을 설계하는 일
특목·자사고에 도전하는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첫째, 초등 고학년부터 목표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경우.
이들은 진로 방향이 뚜렷하거나 부모의 의지가 강해
6학년부터 생기부 설계, 과목별 멘토링, 영어 인터뷰 대비까지 전문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이런 아이들은 거의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
둘째,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진로를 바꾸는 경우.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생활기록부를 들고 찾아오는 아이와 부모는
막연한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이 경우, 아이의 성향과 지원 학교의 특성을 고려해
세 명의 자기소개서 전문 선생님 중 한 분에게 배정된다.
같은 아이도,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자기소개서가 나오기도 한다.
3. 나는 아이의 첫 번째 공동 저자다
나는 그중에서도 아이의 내면을 끌어내는 대화 중심의 작업을 중요하게 여긴다.
처음 만난 아이에게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너는 특별한 아이야. 너만의 색깔이 있어.”
그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첫 번째 리듬이다.
아이의 말은 처음엔 조심스럽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치 재즈처럼 정해진 구조 없이 흘러가는 그 아이만의 변주가 드러난다.
어떤 아이는 논리적이고, 어떤 아이는 감성적이다.
어떤 아이는 조용하지만 깊고, 어떤 아이는 활달하지만 섬세하다.
그 흐름을 듣고,
그 안에서 직업과 진로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선율을 찾아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창의성은 빛난다.
아니, 그래서 내가 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말 한 줄, 표정 하나에서
그 아이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고, 미래를 그려간다.
어떤 아이는 내 앞에서 인권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여행 프로그램 PD가 되기도 한다.
국제기구 통역가가 되기도 하고,
프로파일러가 되기도 한다.
너무도 중요하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나는 종종 감탄하게 된다.
“이 아이는 정말 멋진 사람으로 자라겠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일이 단순한 입시 지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설계하는 창작 작업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
4. 재즈가 흐르는 밤, 조용한 꿈의 설계도 위에서
면접 준비 단계에 들어가면 네 명의 선생님이 함께 관리한다.
같은 생기부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자기소개서가 나오는 걸 보면
이 일이 얼마나 사람 중심의 작업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은 늘 새롭다.
마흔이 넘은 나도 나 자신을 소개하려면 망설이는데,
13살, 16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건
막막하면서도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늘 아이에게 먼저 묻는다.
“너는 뭐가 제일 잘해?”
그 질문 하나로 우리는 조금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잘하는 것을
어떻게 직업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함께 상상해 본다.
무슨 활동을 했다고 말하면 그건 ‘기록’이지만,
“그때 뭐 느꼈어?”라고 물으면 그건 ‘이야기’가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에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해요.”
그걸 말로 정리하는 순간,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
“무엇을 좋아해요”와 “왜 좋아해요”는 다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들은 진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이런 걸 했고,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려면 지금 뭘 해야 하지?”
그런 글을 쓰면서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첫 계획을 세운다.
그걸 함께 글로 풀어내는 나는
어쩌면 그 아이 인생의 첫 번째 공동 저자다.
그건 참 영광스러운 일이다.
아니
조심스럽고, 따뜻하고, 무게 있는 순간들이다.
개인 일정이 많아
늦은 시간 학생이 찾아왔다.
밤은 깊어가고, 재즈는 여전히 흐른다.
책상 너머로 앉은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나는 그 말들 사이에서, 아직 문장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진심을 듣는다.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건,
단순히 문장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그 아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무엇을 꿈꾸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밤이,
이 글이,
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빛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작고 흔들리는 문장이지만,
언젠가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말이 되기를.
그 가능성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문장을 고친다.
재즈가 흐르는 교실, 조용한 꿈의 설계도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