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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Sep 08. 2023

can't helping falling in love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2년 6개월 만에 업무가 바뀌었다. 대대적 인사이동으로 업무 분장이 다시 이뤄졌고 나는 모성에서 고용창출 업무를 하게 됐다.


새로운 일은 내용도 어렵고 절차가 복잡했지만 머리는 즐거웠고, 키보드 소리는 경쾌했고, 내 앞에 보이는 파란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일찍 출근하고 싶었다. 빨리 가서 보고 싶었다. 오래 보고 싶었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갔다. 아니 시간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생각하고 있으면 태양은 사라지고 달이 떠올랐다.  


이게 뭘까?



한 달이 지난 오늘 아침.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엘비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 심장을 관통하자, 나는 알았다. only fool은 나였다.


shall i stay? would it be a sin? take my hand, take my whole life

그래 지금 내 마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감정은 바로  사랑이었다. 



나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you는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이다. ^^


모성업무를 했을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모든 방문 민원과 전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원수당도 사라졌다. ㅎㅎ 


지금의 나는 민간위탁기관에서 1차 알선, 접수, 심사를 마친 지원금 신청 건을 최종 지급하기 위해 하루종일 서류와 각종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검토보고서를 쓰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업무다.


위탁기관들끼리 경쟁을 하는 지원금이다 보니 신청건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동시에 위탁기관 담당자들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청별 기관평가를 받기 때문에 각 센터별 순위싸움도 치열하다.


나는 그러니까 한 달 전, 새로운 세계로 입성한 것이었다.


선배주무관님과 함께 불꽃을 태우며 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반기에 더 몰리는 지원금의 성격상 준비운동을 천천히 길게 할 순 없었다.


 빠르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를 몇 번 반복한 후,   냅다 달렸다. (참고로 백 미터 달리기 25초)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중간에 어지럽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 주무관님의 응원 한마디에,  본부 담당 주무관님의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 금방 다시 일어났다.


느리지만 꾸준히 달렸다. 조금씩 더 깊게 넓게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른 마음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건 설렘이었다.


주변 동료들이 물었다. "어때요? 새로 바뀐 업무 너무 힘들지 않아요? 할만해요?"

나는  저 평범하지 않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었고 그나마 "재밌어요"라고만 했다.


이 업무를 해봤다는 J주무관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여러 번 묻기도 하셨다.


어쩌겠는가 거짓말은 못하겠고.


노래가사처럼

나 아직 이렇게 바보인데 내가 네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 죄가 되는 건 아닐까.

강이 바다로 흐르듯 나와 너의 관계도 결국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바보라서 너에게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가을바람이 깨끗하게 불었던 오늘 아침,

애매했던 나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버린 오늘 아침,

언젠가 이 마음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랑이라는 거.


환영한다. 너를.

헤어질 때 아쉬움도 후회도 없게  사랑해 보자.

미워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오늘아침을 떠올리며 재미나게 있어보자. 나의 새로운 파트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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