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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Nov 12. 2023

시월에 그대들이 있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ㅡ살로우 라테와 치즈크로플

우리 집에서 나의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매우 쫀득하고 달달한 크로플을 파는 카페가 있다.

내가 먹어본 중에는 최고로 맛있는 치즈 크로플이다. 양은 적다. 얼마 전 팀 동료들에게 아끼는 무언가를 보여주듯 소중하게 소개를 했다. 동료분들은 보물을 본 것처럼 소란하게 환대를 해주셨다.  


이후 침착하게 각자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동굴에서 천년만에 나온 유물처럼 숨을 쉬면 부서질까 숨소리도 참으며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사진을 비교한 후 베스트 컷이 결정됐다.


베스트 컷의 주인공은 최근 8월 발령을 받은 신규 주무관님이셨다. 베스트 컷을 단톡방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한 후 우리는 드디어 포크를 들었다.


계피향과 갈색설탕의 조화로운 단맛이 입술에 먼저 닿자마자 부드러운 크림과 찐한 에스프레소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살로우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 모두 눈동자가 두배로 커졌다. 그리고 조금 후 젤라토가 올라 간 인절미처럼 쫀득한 크로플을 먹었을 때 우리 모두 눈동자가 네 배로 커졌다.


"오오 흠 흠, 샘에엠, 이거 뭐죠?, 이게 뭐지?, 맛있어요. 정말로."

우리는 '살로우 라테와 치즈크로플'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대가 있어 이날 우리는 110프로 행복했었다.


- 불족발 반 보쌈 반

회사에서 삐른 걸음에 조금의 달리기를 보태면 2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족발집이 있다.

친한 동기의 추천으로 가게 됐는데 불족발이 너무 맵지 않아서 좋았다. 이 족발은 동기의 보물이었다. 나는 큰 박수로 환영한 후 나만의 아웃포커싱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족발의 탱탱함과 검붉은 양념색을 신선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찍은 후 베스트 컷을 결정했다.


동기도 블로그를 하기 때문에 우린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여 사진을 오래 찍었다. 족발의 양념이 코를 찔렀지만 우리의 몰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저 사진 속 족발 위에 올라간 파채 한 가닥 한 가닥에 집중했던 나의 눈동자가 생각이 난다.  


역시나 맛있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의 예의를 표한 후 우리는 족발 한 점에 치맥을 한 모금 들이켰다.


'맛있게 맵다'는 말을 몸 소 실천하고 있는 족발에게 리스펙을 조곤조곤 전했다.  그리고 소주의 존재감이 낮은 치맥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담백했지만 끝에 조금 느끼했던 보쌈도 깔끔히 먹었다.


이날, 머리가 아프게 꼬인 업무 분장과 사람들 간의 신경전으로 지쳐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대들이 있어 이날도 110프로 행복했었다.



- 레몬 가득 +얼음 가득 +토닉워터 가득 +소량의 소주가 들어간 우리의 청량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날이었다.

이제는 퇴근 시간이면 깜깜해져 버린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재촉해서 15분을 가면 한 점 먹자마자 두 눈동자가 세배는 커지는 삼겹살집이 있다.


그 집에서 실컷 오늘의 '재난 같은 사건'들을 3시간 정도 서로에게 브리핑했다.

하지만 고기의 맛있음에 우리의 '이리 이고, 저리 치이고'를 실감 나게 말 못 한 거 같아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그렇다면 발걸음을 옮겨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천상의 삼겹살집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저 아쉬움을 달랜다.


그곳에선 토닉워터와 레몬과 소주로 우리 맘대로 시원한 청량주를 제조할 수 있다. 찰나의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비율을 맞추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대들로 인해 우리는 오늘의 억울함도 짜증도 0%가 되었다는 것을.


아직 집에 가는 버스가 있다면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헤어진다.


밤바람이 차가워진 탓에 '춥다 추워'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춥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얼굴 속에서 보게 된다. 버스를 탄 후 우리는  단톡방에서 편히 잘 것을 기도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보물집들이 있다. 그래, 가보자.

(P.s  하루에 다 간 건 아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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