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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Oct 13. 2023

개구리의 피로 내 이름을 쓰고 웃었다.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처음엔 친한 편이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펜팔친구였다.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던 그 아이는 어느 산촌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를 궁금해했다.


 펜팔에서 머물지 않고 그 아이 집으로 나를 초대도 했었다. 치킨가게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깨끗한 기름에 튀겨주셨던 레몬빛의 치킨은 산촌 소녀에겐 천국의 음식이었다.



날 보며 시골아이 치고는 얼굴이 하얗다며 활짝 웃어주었던 그 아이가 변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 아이는 걸어서 다녔고 나는 버스로 20분을 타고 가야만 했다. 1학년때만 해도 괜찮았다. 반이 달랐지만 쉬는 시간 종종 만나 웃고 떠들었다.


1학년 겨울방학, 수학을 어려워하던 나에게 그 아이는 본인이 다니고 있던 시내의 한 수학학원을 추천했다.


나는 학원을 다닐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를 졸랐다. 겨우 방학기간 한 달만 다닐 수 있게 됐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나는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2주 즈음 다녔을 때  눈이 아팠다. 늘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다 보니 선생님께서 이 사실을 빨리 알아채셨다.

"00 이가 지금 눈이 많이 아픈가 보네, 그렇게 손으로 계속 문지르면 안 좋고, 안약을 빨리 넣어야 할 텐데"


그때 대각선 뒤쪽에 있던 어떤 남자아이가 나에게 약을 하나 내밀었다.

"이거 새 약인데, 나 한 번도 사용 안 한 거야, 아프면 너 써. 다시 안 돌려줘도 돼."

 

여자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남중학생이 낯설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약만 받았다. 그때 그 아이도 뒷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학원은 정확히 엄마와의 약속대로 한 달만 다녔다.



그 친구가 달라진 건 그때부터였다.

웃었던 얼굴은 사라지고 한참을 째려보고 갔다. 그리고 내 뒤에서 나에 대한 험담을 하기도 했다.

"00 이는 학원에 남자를 꼬시러 다니는 거 같아,

거지도 아니고 남의 약을 왜 가져가는 건지.

 성격이 이중적이야, 선생님들도 지금 속고 있는 거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아무렇지 않게 바로 뒤에서, 어쩔 땐 앞에서 대놓고 나의 험담을 친구들에게 하는 그 아이에 대해 나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거짓이기 때문에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개구리 해부를 하는 날이었다.

대여섯 명이  조를 꾸리고 각 조마다 플라스틱 상자에 갇힌 개구리를 한 마리씩 받았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개구리를 해부했다. 징그러웠으나 이것도 시험에 나온다는 생각 때문에 참을만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실험실을 나가자 그 아이는 학생들을 불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야 00아! 지금 김 00이 이름을 개구리 피로 써봐. "

다른 아이가 "그건 좀 잔인한데, 꼭 써야 돼?"라고 하자

그 아이는 "장난인데, 그리고 김 00 이는 남자 꼬시러 학원 다니는 이중인격자이니까 더러운 피로 이름 석자를 써서 저주받게 해야 돼, 저주를 받아야 한다니까."


아이의 명령을 따른 아이들은 개구리 피로 내 이름을 적고 깔깔대며 웃었다. 왠지 모르게 웃음에서 쇳소리가 났다.

"와 개구리 피로 이름 적으니까 신기하다. 김 00. 받침도 없고 잘 써진다. 이렇게 저주 내리는 거 재밌다."


수업이 끝났지만 실험실을 떠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 아이를 따르는 20여 명의 여학생들과 나를 보며 미안해하는 10여 명의 여학생과 무슨 싸움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서너 명의 여학생들과 그리고 피로 적은 이름 석자의 주인공인 내가 서 있었다.


안타까워했던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그때 안약을 건넨 남학생은 그 아이가 짝사랑하는 상대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개구리 피 사건 이후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에 대해 험담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무 반응이 없었던 나에게 흥미가 식었을 수도 있고 짝사랑의 상대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그 아이를 그날까지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 사건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나 심장 속 어디에도 질투심에 눈이 먼 여중생이 들어올 공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할 수도 있었던 위기감으로 하루하루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나에겐 저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진과도 같은 것이었다.


요즘 들어 이런저런 '학교폭력'관련 기사를 보다가 갑자기 선명하게 저 날이 떠올랐다.

'아 나도 학교폭력을 겪었구나. 피해자였구나 '


그땐 몰랐는데 저것은 지금 와서 보니 '학교폭력'이었다.

나의 가난이 학교폭력을 이겨버린 걸까.

나의 단순함이 학교폭력도 단순화시켜 버린 걸까.


다시 생각해 봐도 저것이 흉터가 되지 않고 사진으로 남아 다행이다. 진심으로.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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