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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Nov 25. 2023

환영받지 못한 자가 위로를 받는 방식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 바이올린 장인의 흰 머리카락은 흩날렸고 손가락들은 분주했고 바이올린의 활은 위아래로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이 곱게 예쁘게 잘 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선율을 배경으로 나의 11월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나의 11월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심은하 같았다. 주인공의 직업은 주차위반 단속원이었다. 주차하지 말아야 할 곳에 주차를 하면 위반 딱지를 끊고 사진도 찍었다. 위반을 한 사람들은 벌금이나 과태료 등을 내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영화를 보면 단속원들은 식당에서도 쫓겨난다.

그들이 오면 손님이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11월은 그동안 지원금을 지급받은 사업장을 방문해서 노동법을 준수해서 제대로 근로자를 채용하고 근무시키고 있으며 각종 노동법과 관련된 신고 사실들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점검하는 달이다.


점검 출장들이 잡히면서 굉장히 긴장을 했다. 나로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봐야 할 것들에 집중했다. 점검해야 할 사업장에 대해 조사했고 의심이 가는 지점들을 기록했다.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들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먼저 기업 점검을 한 동료 주무관에게 무서운 얘기도 들었던 터라 긴장은 두 배가 되었다.

의심이 가는 점을 묻고 관련 서류 제출을 요청하자 사업주가 돌변했다고 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나가라 하고 국가에서 주는 이런 돈 필요 없다 하고 본인은 이미 부자라 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20년 짬의 선배 주무관님이 그분을 진정시켜서 점검은 마무리 됐다고 한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도 그 20년 짬의 선배와 같이 점검을 갔다.

화려한 사업장이었다. 건물도 건물 앞 차도 사업주도. 사무실에 걸려있던 유난히 번쩍였던 가죽재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하이 톤과 하이 텐션의 콜라보였던 사업주 분의 입에서 산에 흙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들이 쏟아 내려졌다.

나는 약간 정신이 나갔다. 손에 들고 있었던 각종 파일들과 질문들은 공기 중에 분해돼 버렸다.

 

산 중턱에 있었던 사업장이어서 점검을 마치고 나오니 도시 아래가 다 보였다.

"말이 많다는 것은 부정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감추려고 하는 거야, 흔들리지 마"

 

그다음 사업장은 온통 까맣고 회색잿빛이 가득한 사무실이었다. 방문 시에도 미리 신고를 해야만 문을 열어주는 엄격한 곳이었다. 모든 서류들이 사각형안에 너무 잘 맞게 들어가 있어서 그게 오히려 이상한 곳이었다.


내가 하는 한마디, 옆 주무관님이 하는 한마디가 조용하고 어두운 사무실에서 누가 기록이라도 하듯 울려 퍼졌다. 우리의 눈동자 움직임도 체크하는 거 같았다.  점검을 마치고 문을 닫고 돌아서니 사무실 안에서 아주 깊은 '휴우'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2부에선 모차르트 40번 협주곡을 들었다. 조금 귀에 익숙했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단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바쁜 바이올린 연주자들에 비해 조금은 느린 듯 가끔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또 잠이 왔다. 바이올린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들이 나에게 "달게 잠을 자세요" 하는 거 같았다.


환영받지 못한 곳에서 빨리 사라져 주길 바라는 나라는 존재는 오늘 옛 선율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나의 지치고 거칠어진 마음에 꿀을 발라주는 거 같았다.


나의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 숙제 검사받을 때 기분 좋았어?"

-"기분이 안 좋았지. 빨리 끝나길 바랐지."

"그래서 선생님이 미웠어?"

-"선생님이 밉지는 않았지. 그냥 그 시간이 싫었지."


마지막은 글라주노프의 콘서트 왈츠를 들었다.

나의 12월은 왈츠를 추는 것처럼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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