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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Mar 13. 2024

쏘맥에서 청포도 맛이 나요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기분이 매우 좋은 오후 4시였다..

즐거운 날이라 오랜만에 치킨들이 말을 걸어왔다.


먼저 전통 치킨 가문의 후예들이 옷을 곱게 차려입고 다가왔다.

"처갓집 후라이드 어떠세요? 양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좀 아쉬우면  추억의 후라이드반 양념반은 어떠신지."

너무나도 정중한 제안에 순간 혹했다.


반반으로 정리되려고 할 때, 저기서 후광을 받으며 온몸이 노랑 꿀로 반짝반짝한 허니콤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모르는 말씀 이런 날이야말로 달달한 치킨으로 가야지.  "


"섭섭한 소리 나를 왜 잊어버린 건데"

어디선가 빨갛게 흥분한 고추바사삭이 시끌벅적하게 걸어왔다.


뒤따라 치킨계 화려함의 끝판왕인 푸링클이  "비 오는 날엔 나를 선택하는 게 좋을 걸"이라고

느끼하지만 당당하게 의견을 밝혔다.  

건강한 낯빛의 소유자 블랙치킨들도 옆 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왜 오랫동안 선택 안 하는 건데,  처음에 나보고 엄청 개성 강하게 맛있다고 했잖아."



잠시 후에 치킨들과 이웃사촌인 술 동네에도 소문이 났는지, 여럿 술친구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맥주님은 당연히 본인이 선택된 줄 알고, 1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자 이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술친구들이 왁자지껄하게 들어왔다.


막걸리님은 치킨의 부족한 영양소를 막걸리님이 채워줄 수 있다며 바나나 막걸리, 멜론 막걸리, 땅콩 막걸리들을 추천했다. 와인님도 등장했다. 고기엔 레드와인이라며 설득했다.


느즈막에 나타난 쏘맥님은 원래 쏘맥을 먹던 사람은 쏘맥을 먹어야 다음 날 컨디션 회복이 빠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원래 쏘맥 마시는 김주무관) 솔깃했다.



진지한 토론과 설득이 이어진 후 결론이 내려졌다.

점잖았던 후라이드 + 자존감이 높았던 허니콤보 + 후라이드 친구 양념치킨과 달콤한 쏘맥으로.


동료가 쏘맥을 마신 후 그랬다.

"샘, 쏘맥에서 청포도 맛이 나요."

우리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 마셔보았다. 처음엔 안 났다. 두 번째 마셔보니 정말로 청포도 맛이 났다.


우리는 알게 됐다. 기분이 좋으면 쏘맥에서 청포도 맛이 난다는 것을 말이다.

고로 쏘맥 친구 건넨 말은 맞았다.  쏘맥은 다음 날 아침,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기분 나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싱그런 청포도의 맛을 주었던


그날 오후의 기분 좋음과 좋은 향에 민감한 동료의 혀 끝에도 깊은 감사표해본다.


<사진 출처: m주무관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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