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반지 Apr 29. 2024

'감사'가 처음이었던 공무원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24년 초 3년마다 한다는 고용노동부 감사일정이 떴을 때만 해도 '우리 지청 한참 멀었네'라면서 별로 깊게 생각을 안 했다. 모르면 용감하다. 감사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니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 그땐.


그리고 내가 하는 업무엔 까마득한 선배가 딱 중심에 있었기에 더더욱 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늘 같은 선배가 2월 정기인사에 멀리 가실지 몰랐다. 그땐.


본격적인 감사일정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나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나의 꿈속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또 인생사 죽으란 법도 없다. 다행히 감사를 여러 번 경험해 본 10년 차 직업상담원 샘이 나의 왼쪽 옆자리로 왔고, 파워긍정걸인 후배 주무관이 나의 오른쪽 옆자리로 왔다.  


감사 전날, 이런 꿈을 꿨다.

대학교 때 굉장히 신뢰를 했던, 현재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한 선배가 운전하는 오픈카를 타고 있었다.

선배는 길도 없는 숲길을 달렸고, 산길을 올라갔다. 오픈카는 거침없었지만 순조롭게 달렸다.

급기야 선배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꽤 폭이 넓은 강을 건너기 위해 하늘로 차를 날렸다(?).

차로 하늘을 날아가는 동안 밑을 보는데 '강이 넓고 파랗구나'라는 생각이 짧게 스쳤다.

그리고 의외로 차는 가볍게 잔디밭 위로 착지를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의 꿈들은 대부분 예지몽이었다.

이번에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저 꿈은 나의 첫 감사의 흐름을 알리는 복선이었다.


<신서유기를 보면 강호동이 이수근을 꾸지람할 때 음악이 나오면서 묘한이 얼굴이 나온다.

현직 공무원이라 신랄한 감사이야기는 그렇게 넘겨본다.>


꿈은 맞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 없는 곳으로 마구 가는 거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업무는 순조롭게 달렸다.

 

짬이 있는 옆동료가 넓고 밝은 조명을 비추고,

파워긍정걸 옆동료가 이 세상에서 제일 센 에너지를 쏟아붓고,

김주무관의 거침없는 운전 실력으로

우리 셋은 강을 건넜다. ㅎㅎ 그리고 적당한 길이의 잔디들이 가득한 푹신한 쪽에 착지도 했다.


짬이 있는 동료와 파워긍정걸 동료와 나는 감사 기간 내내 비타민, 콜라겐, 생강효소를 매일 먹었다.

그 덕분일 수도 있다.


일주일의 감사가 끝나고, 나는 머리를 아주 짧은 단발로 뎅강 잘랐다.

왠지 머리가 가벼워진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의 첫 매운 감사, 이젠 안녕


<사진출처: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