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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Nov 09. 2024

악성민원의 상처는 친절민원의 위로로 치유된다.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급하게 사무실을 들어온 그분은 신분증을 던지듯 주며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왔다고 하셨다.

나는 확인을 한 후, 마지막으로 퇴사한 사업장에서 퇴사 사유가 '자진퇴사'라고 신고 돼 있기 때문에 실업급여는 신청할 수 없을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사무실이 떠나갈듯한 목소리로 '마지막 사업장? 마지막이라는 게 뭐냐"부터 "'자진퇴사'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내가 왜 실업급여를 못 받냐 이유를 말해달라. 마지막은 왜 한 개냐 마지막은 여러 개다, 선생님 잘 모르시네 마지막이 왜 한 개냐고요 등등"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순간 그 노래가 떠올랐다. 옛날에 좋아했던 만화 주제곡인데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은 아니야'. 달리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영심이가 왜 그런 노래를 불렀는지 45살인 지금 진심으로 이해되려고 했다. >


그리고 어디론가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해서 전화기 너머의 사람 하고도 핸드폰이 깨질 듯한 데시벨로 너무나도 개인적인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사람 하고도 싸우기 시작했다.  


<그땐 요즘 듣고 있는 '거짓말거짓말거짓말'의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가사가 눈앞에 흘러갔다. >


나는 그 민원인의 모든 행동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동시에 '너네 서장 00동에 살제'로 시작하는 어느 동사무소의 특별민원 응대 훈련 영상도 생각났다.


각종 가삿말들이 뒤엉켜 마음의 소리들이 쌓여가고 있을 때 팀장님이 조용히 내 뒤로 와주셨다.'무슨 일로 큰 소리를 내고 계시냐'며 정중하게 물은 뒤 '직원뿐만 아니라 민원인들도 업무를 진행할 수 없으니 흥분을 가라앉히라'라고 한 뒤 그분을 안쪽으로 데려가셨다.


엄하게 굳은 팀장님의 표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가 조금은 작아진 그분은 팀장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다시 높아진 데시벨로 한참 하소연을 하는 것이 들렸다.


나는 마음은 괜찮지 않았으나 얼굴은 아무렇지 않았다는 듯이 민원인의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민원인이 나지막이

" 큰 소리에 놀라셨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저렇게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힘내세요.

  고마웠어요. 파이팅이요" 하시며 고운 미소를 보여주시고 가셨다.


그다음 민원인도 "고생 많으셨어요. 힘내요.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신 뒤 따뜻한 미소를 남기고 가셨다. 그리고 그 후로도 다른 민원인들 역시 별말씀들은 없었지만 얼굴의 표정과 자세에서 다정한 위로들이 전해졌다. 가삿말처럼 새하얗게 얼어버렸던 마음이 서서히 녹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나는 영심이 노래, '셋이면 셋이지 넷이겠느냐, 넷이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영심이가 알고 보니 77년생이라 나보다 언니였다. 영심이 언니의 가르침을 그 특별민원인에게 정말로 들려주고 싶었다.


"마지막은 마지막이지 처음이겠느냐 마지막은 마지막이지 처음 아니야, 그리고 진짜 마지막은 한 개라고"

아 마음의 소리 정말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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