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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rain D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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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Oct 24. 2021

사는 게 좆같아?

그럼 어른 된 거래. 






- 사는 게 좆같애?

- 응.

- 시발 어른 됐네.

- 응.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네 컷 만화를 보는데, 불쑥 어릴 적 일이 떠올랐다. 


반 지하집. 

겨울에도 곰팡이가 슬어 있는 눅눅한 방.

그 좁은 공간에 여럿이 쪼르륵 누워 잠을 청하곤 했던 시절. 

한가운데 부록처럼 껴서 자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단 한 번도 '불행하다'라고 느껴본 적 없었다. 

 

나란히 일렬종대로 누웠던 잠자리. 막내 사촌 언니는 항상 내 옆자리였다. 우리는 잠자리 메이트 같은 것이었다. 그 언니는 나 보다 6살이 많아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른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이불속으로 들어가 속닥 속닥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그것은 마치 무전 장치에서 들려오는 굴곡이 없는 말소리처럼 어둠의 잔해 위로 일렁일렁거렸다. 때로 먼저 잠든 옆 옆 자리 이모 코골이 소리가 심한 밤이면, 출격하는 부대의 병장처럼 조심조심 인간 둔덕을 넘어가 기관총 같은 소음을 내는 이모의 코를 틀어 쥐기도 했다. 그런 수련회와도 같은 밤들은 계속 이어졌다. 


근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불행을, 비참을, 서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왜?


그래도 그때의 나는 다음 날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왜?


그때의 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잘 웃고, 건강하게 뛰어놀았으며,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친구들과 떼로 어울려 다니며 아지트도 뚝딱거리며 만들며 노는, 

그런 활기찬 유년기를 보냈다.


어떻게?


.

.

.


도대체 왜?

'왜'라는 외 글자 뒤에 떡하니 붙어 부표처럼 덜렁 떠올라 의식의 표면 위를 부유하는 물음표. 


그래, 구김살.

유년기의 내게는 가난의 구김살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 '왜'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추측이지만, 가장 사실에 가까울 추측 같은 것이. 


어쩌면 그 모든 '왜'는 그 당시 한 방을 한 부대의 막사처럼 공유하던 어른들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비참과 결핍에 위축되고 쪼그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를 잘 먹이고 재워준, 투박한 사람들의 인정머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당연하기만 했는데, '시발 어른'이 되어보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그것도 사랑의 한 종류라 칠 수 있음을. 


누군가의 인생에 구김살이 가지 않도록 묵묵히 진 자리를 말리고 또 말려주는 것 또한, 


사랑의 한 가지 행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서툰 제혁공의 수습 품처럼 거칠거칠한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다정이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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