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를 받는 중에, 치료사가 문득 물어왔다.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 해드렸어요?"라고.
그래서 나는 "돈이나 좀 보내드렸어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치료사는 "에이, 얼굴을 보여드려야지..."라고 말했다.
아마 그 뒤에 생략된 말은, '그래야 더 좋아하시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은 돈 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나의 사회적인 자아는 직접적인 답보다 애매한 표현을 골랐다.
"그러게요."
였던 것 같다.
"아닐 걸요?"
이 대답은 내게 더 씁쓸하게 들릴 것 같아서.
-나는 천 년 동안 나와 가족 간의 거리를 채우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다. 거기에 비하면 내 집을 채우는 건 수월했다.
소설 <키르케> 속 키르케의 중얼거림이 문득 떠오르던 오후.
잘못된 건 어느 쪽이었을까.
때론, 배우지 못한 어설픈 서투름도 연약한 서로에게 메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버리곤 한다.
무뎌지는 것은 ‘가족’이라는 말이 남기는 여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