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에 둘러싸인 우리들의 이야기
그렇게 정신없이 앞을 보며 달리다가 옆을 보니
너도 나와 같은 신을 신었구나.
QM - HANNAH
-결혼은 하셨어요?
-집은 구하셨어요?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가족들은, 잘 지내시나요?
속 빈 질문들이 쏟아진다. 언제부터 그런 속 빈 질문들을 목욕물 맞듯 가만히 맞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질량이 없을 터인 속 빈 질문들이 어째서 내 속을 가득 비집고 들어오는지 모를 일이다.
어른이 되어보니 기묘한 압박감이 든다. 세상 곳곳에 퍼져있는 '보통의 삶'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나의 삶과 조용히 대조를 이루어나가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보통의 삶'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며,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보통의 삶'이 사방에서 천천히 나를 포위하듯 옥죄며 다가온다. '보통의 삶'이 떠오르며 내게 조롱하듯 비아냥댄다. 이제 이렇게 살지 않는 너, 큰일 났다?
'보통의 삶'들은 도처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느 장소를 선택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보통인가? 나는 '보통'의 힘을 체감한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매번 누군가의 소식을 듣는 것이, 서랍장에 쌓인 청첩장을 보는 것이, 친구네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는 것이, 당연한 듯 누군가를 위해 주말을 비워둔 이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어느덧 서울의 풍경에 신선한 감흥 따위는 없다는 눈빛들이, 갓 태어난 아이의 사진을 보는 것이. 그들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봤었는데, 어느 순간 당연하다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커서 어떻게 살고 싶어?
저는 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킥킥···. 얘는. 평범하게 사는 게 쉬운 줄 아나.
취직을 위해 상경한 지 7년이 지났다. 어머니는 무당놀음에 빠졌고, 아버지는 없다. 형은 간신히 밥벌이만 하며 칩거 중이며, 친척들과도 소식을 나누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보통의 삶'들이 일어날 때 즈음이 되어서야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와 같이 어른의 품에서 떠났던 아이들은 낯빛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유년기부터 어른의 품을 떠나 살아온 나는 어른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조숙한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나는 지금에서야 아이 같다. 마치 어릴 적 내가 어른스럽게 보이려 노력했던 정도가 내 최대치인 것만 같이.
어른들이 지겹도록 말하던 클리셰. 보통의 삶은 어렵다는 말. 보통으로 사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데, 내 주위엔 어찌 이리도 보통의 삶이 많은지. 아. 이건 비교와 열등감이겠지. 그럼 내가 주욱 지방에서 살았으면, 보통의 삶이었을까?
아니, 아닌 것 같다. 열등감이 아닌 것 같다. 이건 보통의 삶이 아니다. 감정을 걷어내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내 삶은 보통이 아니다. 어른들은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마치 역린처럼, 무언가를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 거울을 봤더니, 내게는 비늘이 잔뜩 뒤덮여 있었다. 비늘들은 쉽게 떨어지지도, 뽑히지도 않았다. 씻어서 흘겨내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문득, 어릴 적 밥상을 집어던지던 친부의 얼굴에서 비늘의 형상이 스쳐 지난다.
나는 어릴 때, '우리는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참 좋아했다. 성인과 어른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이지만, 같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나는 그 구분점에 매료되어, 빨리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 보통의 것인지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나의 이야기를 했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 알았다. 내 삶을 나누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도망간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곤란해한다. 부담스러워하고, 필경 무거워하며 힘들어한다. 아닌 척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곧 멀어지고, 사라진다. 가면을 쓰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어른의 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끝내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 것인지, 그리고 자라날 모든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남을 것인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어쩌면 우리의 가슴속에 자라난 지독한 자기 객관화의 씨앗은 상술한 한 줄의 문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보통의 기준 같은 것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 줄을 긋고 서로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다. 삶을 구분하는 일은 어른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고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누구나 어른이 된다. 그래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그 질문을 안고, 나는 어른의 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다.
이건 보통의 삶에 둘려 싸여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언뜻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른의 품이 없었던 내가, 사회를 여행하며 만났던 어른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을 관찰했던,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