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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Aug 02. 2021

플로리스트가 되는 방법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요. 정해진 방법이 있다기 보다는 다양해요. 보통은 꽃집에서 작은 일 부터 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죠.”

“그래도 꽃집에서 일을 하려면 필요한 요건이 있을테고, 이 분야도 자격증 있지 않아요?”

“네 있긴 해요. 근데 그게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실제로 자격증 없이 활동하는 플로리스트도 많아요.”

“네? 그거 불법 아니에요.?”

“아뇨, 전혀요. 우리 일은 자격증이 필수 요건이 아니예요. 솔직히 그 자격증이란 것도 좀…”

(말을 끊으며)

“그럼 어떻게 그 사람을 플로리스트로 인증해 줄 수 있죠? 적합한 평가를 받고 그걸 통과해야 하지 않나요?”

“음, 그럼 우리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화가에게 자격을 물을 수 있을까요? 수채화 자격증, 유화 자격증. 뭐 이렇게요. 하하. 죄송해요. 말하면서도 살짝 웃음이 나네요. 그리고 작곡가나 음악가에게도 자격증을 줄 수 있을까요? 랩작곡자격증? 아니면 힙합자격증은 어때요?”

“지금 저 놀리는 거예요? 그런게 어딨겠어요. 그건 그 작품을 사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는 거죠.”

“빙고! 바로 그거예요. 꽃을 통해 무엇을 창조한다는 건 미술이나 디자인에 가까워요. 그것에 점수를 매기고 합격, 불합격을 나눈다는 건 우스운 일이죠. 가령, 99명이 봤을 때 형편 없는 작품이라 해도 단 한명, 그것을 좋아해 줄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아까 ‘인증'이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인정'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시험을 통해 인증 받는 직업이 아니에요. 우리는 ‘인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첫째로 클라이언트, 고객이예요. 그 분들은 단순히 우리의 자격증 유무를 보고 일을 주지 않아요. 지금껏 해온 작품들을 통해 결정 한답니다. 하지만 지난 작품 또한 참고 사항일 뿐 중요한 건 그들이 맡긴 일을 차질 없이 해내야 한다는 거예요. 매 회, 매 건 고객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야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어요. 한번 신용이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죠. 그리고 정말로 무서운 건 또 누구한테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알아요? 바로, 현직에 있는 다른 플로리스트들이에요. 음, 예를들어 볼까요? 연예인 누구가 꽃집을 차렸다고 가정해 볼게요. 오해 말아요. 이건 그냥 가정 일 뿐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네, 뭐 한두번은 호기심에 가볼 수 있겠죠. 하지만 내 결혼식의 웨딩 플라워나, 행사 꽃장식 같은 걸 맡길 수 있을까요? 그래요, 그건 연예인이라는 직업과는 상관 없이 플로리스트로서 충분히 커리어를 쌓아야 가능한 일일 거예요. 그리고 그 연예인님이 꽃시장에 갔다고 칩시다. 연예인으로 왔을 때는 하트가 뿅뿅하는 눈으로 보겠지만 플로리스트로 왔다면 아마도 다른 플로리스트들이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할 지도 몰라요. 아, 우리가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셔요… 음, 이건 시기나 질투의 눈빛이 아니예요. 플로리스트는, 아니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이름은 모두에게 쓰여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붙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유명세를 업고 어느날 갑자기 ‘저는 플로리스트입니다.’하고 선언하는 건 인정할 수 없죠. 이전에 어떠한 직업을 가졌던 간에 플로리스트로 인정 받을 만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거예요.”

“뭐예요. 이 우울하고 잔인한 얘기는”

“에휴, 제가 너무 진지했죠? 죄송해요.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답니다. 스펙이라고 하죠?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따고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고, 이렇게 이력서에 칸칸이 채워지는 것들은 그냥 비싸고 화려한 옷 같아요. 하지만 나에게 꽃과 가위, 일이 주어지는 순간 발가벗겨져 무대 위에 오르는 거예요. 수 많은 눈들이 내 손 끝만 향하죠. 나의 스펙은 과거일 뿐 결국 그들의 눈에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저는 그저 비싼 옷을 입었던 것에 불과한 거예요.”

“토닥토닥, 제가 괜한걸 물었네요. 알겠어요. 인증이 아닌 인정!”

“네, 그래요. 고마워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정말 많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플로리스트가 될 수 있는지. 대화의 흐름은 언제나 이와 같다. 나 역시 명쾌하게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시험 봐서 합격하면 그날로 플로리스트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시험도 있고 자격증도 있지만 이걸 통과한다고 해서 그날로 플로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통과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험을 치기 이전, 자격증을 따기 이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그저 노력에 대한 보상 쯤으로 해둘 수 있겠다. 딱 그만큼이다. 때문에 이렇게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다. 단답형의 답이 가능하다면 질문 그리고 답. 이렇게 두단계면 되겠지만 플로리스트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려면 질문, 설명, 이해 이렇게 세단계를 거쳐야 한다. 본의 아니게 구구절절 해지는 거다. 

SNS를 통해서도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나 나의 SNS는 웨딩 플라워에 대한 콘텐츠 들도 많아서 웨딩 플로리스트는 어떻게 되는 건지, 플로리스트가 된 후 다시 시험을 봐야하는 건지 등을 댓글을 통해 남긴다. 이런 댓글을 받으면 어딘가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우리가 너무 시험에 매몰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법 진지하고 자세하게 답글을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와 닿는 답은 되지 못할 것 같다. 겪어 보기 전까지는, 이 일을 정말이지 직업으로 해 보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분명 남아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생각이 온전히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다른 길을 통해 플로리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이처럼 플로리스트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오히려 정답이란 것이 없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시험이나 자격증 같은 것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꽃은 예쁘다.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이 예쁜 꽃을 온전히 느끼고 즐겨야 한다. 어쩌면 시험보다 그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 직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듯, 좋아해도 될까 고백해도 될까 조심스레 다가 갔다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포기할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려 아끼고 사랑함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처음의 설렘, 꽃을 알아가고 싶은 그 시작의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롯이 자신의 감각을 통해 꽃을 알아가는 시간은 건너 뛴 채 시험지 위의 너다섯개의 보기로만 배우게 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그 예쁜 마음만으로도 이미 플로리스트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저 긴 호흡으로, 먼 걸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아휴, 정말. 답이 없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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