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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적화에 대한 강박이 있다. 나는 이것이 인류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선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유한한 자원에 대한 공포는 몸에는 지방을, 창고엔 식량을, 옆에는 안전한 사람을 두게 했다. 뭐든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것이라면 일단 그렇게 해보는 것은 내재된 유전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핵심적인 논란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러닝을 하게 되면 한 번쯤은 고민을 해보게 되는 것이 바로 케이던스와 마일리지다. 어떤 리듬으로, 얼마를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다리에 힘이 붙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도 러닝은 편해지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다면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왜 180 spm인가>
180 spm(step per minute)은 분당 발걸음수를 말한다. 즉, 1분에 180번 발을 떼는 것이 러닝에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180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 이 숫자는 Jack Daniels라는 사람이 대중화시켰다. 잭콕의 그 잭 다니엘 아니다!
마법의 180 spm은 잭 다니엘스가 1984년 올림픽에서 엘리트 장거리 선수들의 spm을 측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측정 결과는 우리가 180 spm을 신봉하는 것과는 살짝 달랐다. 그가 연구한 46명의 러너 중 단 1명만 180 spm 미만을 기록했다. 또 잭 다니엘스가 20년간 대학생들을 지도하는 동안 케이던스가 180 spm을 넘는 초보 러너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잭 다니엘스는 자신의 책(Daniels' Running Formula)에서 '장거리에서 효율성을 향상하려는 주자들에게 180 spm이 좋은 목표가 될 수 있다'며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잭 다니엘스는 180 spm을 마법의 케이던스로 제시한 것이 아닌 것이다. 엘리트 선수는 180 spm 이하도 뛰는 사람이 없고, 초보 러너는 180 spm 이상으로 뛰는 사람이 없더라! 그러니 초보가 엘리트가 되려면 180 spm을 목표로 연습을 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실제로 Haile Gebrselassie는 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197 spm으로 2시간 3분 59초를 달렸고, Abebe Bikila는 1964년 도쿄 마라톤에서 217 spm으로 최초로 2시간 12분 13초를 달렸다.
즉, 엘리트 선수에게 180 spm은 너무 느린 케이던스인 셈이다. 많은 선수들이 180 spm보다 빠른 케이던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초보 러너나 레크리에이션 러너에게 180 spm으로 뛰라는 것은 빨리 뛰라는 뜻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참조점 그리고 지침>
케이던스는 체력과 기술-은 러닝의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뿐 아니라 키나 다리 길이도 영향을 준다. 발목부터 무릎까지의 길이가 짧은 경우는 더 높은 케이던스가 필요하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다. 다리가 긴 사람이 천천히 뛰면 낮은 케이던스가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효율에 집착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 또한 며칠 동안 180 spm으로 뛰느냐 개고생을 했었다. 가장 효율적인 달리기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애를 썼었다. 하지만 180 spm은 참조점이지 최적점은 아니었다.
자신의 체력과 체형에 맞지 않는 케이던스는 오히려 달리기를 부자연스럽게 한다. 결국 마법의 180 spm은 규칙이 아닌 지침으로 간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달리는 동안 자신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보폭과 케이던스를 실험하면서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상체와 리듬이 맞는 자신만의 고유한 케이던스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게 무조건 180 spm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일리지를 얼마나 적립해야 하나>
은근히 마일리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러닝 마일리지로 심리적 경쟁 우위를 점하고 싶은 것일까? 러닝 앱들이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내가 사용하는 나이키 러닝 앱에서는 같은 기간을 달린 러너들의 마일리지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상위 몇 %에 속하는지를 보게 되면 은근히 경쟁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월에 190km 정도의 마일리지를 적립해 왔다. 상위 20%라고 하는데 내 앞에 수천 명이 있다. 앱을 쓰지 않는 사람, 다른 앱을 쓰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너무 까마득해서 딱히 경쟁심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지구력과 속도를 올리고 싶은 사람들은 높은 마일리지를 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 또한 당연하다. 많이 달려본 사람의 지구력이 더 좋고, 속도도 더 빠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문제는 부상과 피로다. 러닝 마일리지가 높아지면 부상의 위험과 피로도도 같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상은 누적된 피로에서 온다. 갑자기 발목이 댕강하고 부러지는 것이 아니다. 피로가 누적되고 회복이 더뎌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무리를 하게 되면 그때 관절 주변에 염증이 생기게 된다.
보통 이렇게 부상이 생기면 6주 정도는 치료를 받으면서 쉬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정기간 꾸준히 러닝을 한 사람의 경우는 3주 정도 러닝을 하지 않아도 '오늘부터 1일'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6주는 얘기가 다르다. 정말 완전 초짜 런린이가 되어 버린다.
러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금 헌터라서 무리를 해서라도 기록을 올려야 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땐 부상과 피로를 이겨내야 한다. 뛰지 않는 시간엔 회복에 중점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무엇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마일리지를 얼마나 적립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도 180 spm처럼 정해진 답이 있진 않다. 달리기의 목표, 경험 그리고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합리적이고 타당한 목표 마일리지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몸의 메시지를 따르라>
나는 케이던스나 마일리지나 혹은 그 외 러닝과 관련된 논란에 대한 해답으로 몸이 전하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다. 달리기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전해져 오는 느낌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이다. 발을 디딜 때의 미세한 느낌, 탄성 그리고 몸의 밸런스 같은 것은 정말 은밀하고 설명하기도 곤란한 사적인 데이터로 쌓이게 된다.
달리기는 내 뇌 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버리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게 집중해서 쌓이는 개인적인 경험 데이터들로 나에게 맞는 케이던스와 마일리지를 찾는 실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달려보면 스스로 알게 된다. 5km를 달렸을 때와 8km를 달렸을 때 input 되는 데이터가 다르다. 그 미세한 차이를 스스로는 안다.
몸이 보내는 데이터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정답이다. 특별히 기록에 대 한 목표가 없고, 속도도 조깅과 러닝 그 어딘가 즈음이라면 180 spm도 잊고, 마일리지도 잊어도 된다. 180 spm으로도 뛰어보고, 170 spm으로도 뛰어보면서 자신의 체형과 리듬과 체력에 맞는 케이던스를 찾고, 그 케이던스로 삶의 다른 일들과 공존 가능한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된다.
그리고 달리기의 진짜 매력은 변화다. 매번 다르다. 앞 10바퀴가 다르고 뒷 10바퀴가 다르다. 1km를 달렸을 때가 다르고, 5km를 달렸을 때가 다르다. 매번 다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나는 173 spm이 맞으니까 계속 이렇게 매월 300km를 뛸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러닝의 진짜 매력을 못 누리는 것이다.
아무리 결론이 케바케고 사바사라고 해도 정확한 숫자를 찾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쩌겠는가? 일률적인 숫자는 굳이 찾는 사람에게 줘버리시고, 자신만의 숫자를 찾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전에 반드시 무엇을 목표로 달리는지를 설정하시길 추천한다. 울트라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를 하겠다는 것과 면역을 높이겠다는 목표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날이 추워져서 새롭게 달리기 하기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죽 끓듯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추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 한 번 달려 보시고, 달림을 이어가 보시길 추천드린다. 굿 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