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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Aug 29. 2020

왜 서로를 미워할까

사고실험 09 혐오에 대해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思考實驗];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단순하게 가정한 후 이론을
바탕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한다. 실제로 만들 수 없는 장치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사고실험' 서

*먼저 읽으시면, 글을 즐기시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왜 서로를 미워할까

사진 1

     꼴이 우스운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그에게 최선이었음은 고려하지 않는다. 본인의 최선이 부정당할 때는, 심지어 상대를 비난하는 광경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체 게바라의 말처럼 권리는 투쟁한 만큼 얻어진다지만, 권리를 넘어 목적을 잃은 투쟁으로 변하고 있다. 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할까?

사진 2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종착역이 아니라 네안 데르탈인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뇌 용량과 몸집이 컸다. 

     동물들의 집단을 만드는 주 요소는 스킨십이다. 직접 몸을 맞대며 서로를 확인한다. 하지만 언어는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 결과, 큰 집단을 형성하는 네안 데르탈인이 우세했다.


     하지만 리는 새로운 것을 나르기 시작했다. 거짓말과 험담, 즉 존재하지 않는 추상을 무리 전체에 전달했다. 집단을 묶는 한 가지의 공통된 틀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더 큰 집단을 만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섰다. 그렇게 문화권이 형성이 되고 국가가 생겼다. 자신의 집단과 다른 추상을 가진 상대는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었다.

사진 3

     심리학에서 혐오를  "인류가 진화하면서 습득한 피해를 는 대상을 멀리하는 감정"라고 정의한다. 다른 집단의 혐오는 진화론적으로 매우 당연한 것이다. 과연 인간만이 이렇게 생각할까?

     가장 사회화된 생명체인 개미를 보자. 오직 여왕개미만 알을 낳는다. 일개미 알 유전적 유사성 37.5%다. 하지만 여왕개미가 낳은 일개미끼리는 75%가 된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은 인간의 잘못된 습성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기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근거 없이 단순히 다르다고 천대받은 왼손잡이의 역사가 있다. 그들의 특별성까지 주목받으며 대우는 달라졌다. 비슷 유전자를 전달해야 하는 인간은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사진 4

     유럽은 지리 특성상 경쟁이 불가피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온전히 귀족과 부르주아에게 돌아갔다. 신대륙의 발견은 피지배계층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이해관계로 하나가 되었다.
    자유를 위해 왔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토착민을 몰아내고, 광월한 대지의 족한 노동력은 다른 대륙의 사람들로 충당했다. 새로운 이해관계 탄생 이 땅에 자유 낳다. 갈등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다.

     자신들이 받은 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다. 자유의 가치는 전부와도 같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 중 표현은 주장을 넘어서 혐오로 변질됐다. 유색인종의 비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당연하다. 아무리 성경에서 죄악이라고 지만,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린 결론은 위험하다.
    청교도들이 세운 가장 보수적인 나라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합리를 지향하는 사회를 건설했다. 그에 걸맞은 로비 제도가 있다. 영향력을 사회에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다. 소수의 집단은 차별을 이겨내고 사회 정상에 올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진 5

     국권은 상실됐었고 해방 후에는 외세의 이념때문에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맞이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군부독재 아래 살아왔다. 그렇지만 항상 위기 속에 뭉쳤던 국민들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냈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산업화 이전에 우리는 농경사회였다. 그 특징은 집단주의 문화다. 점진적인 사회 개혁이 일어난 서양과 다르다. 사회와 기술 발전의 불균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풍요가 해결해줄 거라 믿었었다. 서양의 문물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각을 이상이라 여겼다. 아직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그들과 같은 행동은 눈엣가시였다.


     진지한 행동을 한다면 진지충,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하면 설명충과 같은 신조어가 탄생했다. 비록 단어가 가지는 뜻만큼 악의는 없다지만 언어 사고를 지배한다. 점 생각이 다른 상대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높은 교육 수준이 이를 가속시켰다. 많이 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본인의 앎이 부정당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본인의 수준 또한 너무 높게 판단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그들이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이유가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자신감의 결여된 상태에서 불만의 표출 중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소속감의 부재가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상식이 극에 달할 때 촛불시위가 일어난다. 청년들이 주를 이룬 반면 노인들은 반대 위해 나왔다. 한 탐사보도에 따르면 노인들은 어느 회사로부터 일당을 받고 길거리에 나왔다. 렇기에 대다수가 시위의 목적을 몰랐다.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소속감 부재를 해결시켜줄 이러한 일을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사진 6. 그 후 유럽 여러 나라가 난민을 수용하는 입장을 밝혔다.

     공감은 단계가 있다. 감정은 전염된다. 그리고 동심을 느낀다. 마지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인간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배려심의 부족은 진화가 덜된 것을 의미한다.
     문명은 두 가지의 결합으로 발전한다. 자연에 호기심을 바탕으로 관찰을 통해 과학적 사고를 한다. 이런 생태 지능과 공감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문명이 유지된다. 인류사는 공감의 확장으로 설명이 된다. 혈연관계에서 부족, 지역 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탄생했다. 이제는 가축이 가족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내전으로 인해 많은 난민이 발생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인접가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와중에 큰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스로 가던 배가 뒤집혀 시리아의 소년이 해변으로 떠내려왔다. 겨우 3살이었다. 다음날 독일과 프랑스가 문을 열었다.  
     지하철에서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임산부를 보고 금방이라도 내릴 것처럼 문으로 다가가는 아주머니는 그때를 회상한다.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의 손에는 나물이 한가득이다. 평소처럼 쓸데없는 것을 잘 사오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잔소리가 아니다.

사진 7. J. M. 보헨스키는 폴란드 태생의 철학자이다.

     현대 논리학의 거장인 보헨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철학의 중요한 임무는 광신과 광기에 맞서 진정한 생각을 지키는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시위라는 탈을 쓰고 약탈과 폭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시위의 목적을 상기시키고 거리의 쓰레기를 치웠다.


     우리 아이들이 바다에 비치는 별이 되었을 때, 책임을 묻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그들은 계엄령 선포 고려했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평화시위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이 유지되는 이유는 광기에 지배된 사람보다 진정한 생각을 지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진 8. 비록 J. F.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에서 인용했다고 했지만 의도적인 해석이라는 평이있다.

     무엇이 아이들을 영원히 꽃다운 나이로 살아가게 만들었는가. 어른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싸울 때 무엇이 학생들의 손에 연필 대신 총을 잡게 했을까. 잔소리는 했지만 정작 젊은이들의 노력을 알아준 적은 있가. 이들이 희생해 영웅이 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를 놓치는 이 세상은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어쩌면 다른 생각을 하는 그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것을 억지로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의 분노가 본성을 넘어선다면 우리 또한 광기에 지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까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이제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은 없다. 케네디의 말처럼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장소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이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관심으로 대해야 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별게 아니다.


     방관의 역사 되풀이지 않기를 바라며 상기를 위한 말로 마무리하겠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논리적 비약과 모순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떤 주제에 대해 단지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생각하실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진 출처

사진 1 : https://unsplash.com/photos/t78CTOky1go

사진 2 : https://unsplash.com/photos/9wZul8fNxp0

사진 3 : https://www.oxfordstudent.com/human-evolution/

사진 4 : https://unsplash.com/photos/l68Z6eF2peA

사진 5 : https://unsplash.com/photos/qegMLAiTBA4

사진 6 : https://unsplash.com/photos/NVPOQYHBAEE

사진 7 : https://unsplash.com/photos/xEARzBHuKZs

사진 8 : https://unsplash.com/photos/OpBcrmTo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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