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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Dec 28. 2020

『문장』예술가

- 이태준, 정지용, 이병기가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가람 이병기,  사진출처-익산투데이

 문장파 예술가들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 잡지 『문장』에 대하여 알아보자. 『文章』은 1939년 2월에 창간되어 1941년 4월에 폐간되었으며, 해방 후인 1948년 10월 정지용이 속간하였으나. 제1호로 종간하였다. 『문장』은 일본 총독부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 한반도의 병참기지화를 내세워 조선 내 문화 창조의 가능성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 속에서 제한된 범위에서 나마 문학 활동을 후원하고 그 성과들을 공개하는 전문적인 문예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소설가 이태준(李泰俊)이 주간을 맞아 소설 편집에 관여하였고 시에는 정지용(鄭芝溶), 시조 및 고전 분야에는 가람 이병기(李秉岐)가 맡았다. 『문장』은 신인 추천제를 통하여 많은 문인을 발굴하였는데 소설에 최태응, 곽하신, 임옥인, 지하련, 정진역, 한병각, 선진수, 유운경, 허민, 임서하, 시에 이한직, 김종한,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박일연, 조정순, 최남령, 허민, 황민, 시조에 조남령, 김영기, 김상혹, 이호우, 장응두, 오신혜 등이다. 국어국문학, 미술사학 및 민속학 분야에는 이희승, 송석하, 조윤제, 손진태, 고유섭, 양주동, 정인승, 최현등 쟁쟁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분야의 논물을 발표하고 자료를 발굴, 소개했다. 『문장』에 발표된 작품 수는 소설 182편, 국문학 35편, 시 172편, 시조 25편, 평론·학예 129편, 수필 187편, 기타 172편 등이다. (이 집계는 최재섭의 석사학위 논문 〈《문장》지의 시 연구〉, 경남대교육대학원, 1988에서 옮겼음).



‘문장파’란 우리 전통문화나 동양고전에 대한 애정, 우리말에 대한 깊은 조예, 그러한 관심을 실제 창작에 반영하여 문학작품을 남겼고 『문장』에 실은 일련의 예술가들을 칭한다고 할 수 있다. 『문장』 주 편집인인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연현은 『문장』과 『인문평론(人文評論)』 의 성격을 대비하면서 “전자가 친한국적, 친동양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친서구적 지향이 엿보였다고 말한 바 있으며 1940년 한 논평가의 정의를 빌어서 『문장』의 특질을 ‘선비다운 맛’과 ‘고전에의 후퇴’ 두 가지로 요약하기도 한다. 『人文評論』 과 대립적인 위치에 서는 『문장』의 특징은 주 편집인인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의 심미적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결정된다.


상허 이병기와 기족, 사진출처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PRINT/711074.html

가람 이병기는 조선조 고전문의 소개와 시조 창작을 전담한다. 이병기가 편집에 관여함으로써 조선조 문화의 고전적 유산에 대한 문장파의 관삼이 구체적인 내용과 지표를 얻고 정착되었다. 고전에 투철한 관심과 ‘선비’로 집약되는 조선조 지식인의 교양과 기품에 대한 문장파의 동경의 근원은 이병기였다. ‘선비-난-이병기’의 상징적 근원이 문장파의 구심점이다.


정지용이 기고한 시편들은 ‘친 동양적, 친 한국적’ 감수성은 그가 『문장』2집에 <장수산(長壽山)1.2.>을 기고한 이후 <백록담(白鹿潭)>을 발간할 때까지 『문장』에만 시를 발표했는데 그 일련의 시들은 정지용 개인의 문학적 변모 과정에서 동양정신의 내면화로 특징 지어지는 시기이며 문장파가 추구한 문학점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


고문(古文)), 한시(漢詩), 서주(書晝)에 대한 이태준의 경도는 높으며 문학파의 문학적, 미학적 기획은 그의 개인적인 열망과 의지가 일종의 집단적인 에너지로 증폭된 결과이다.


『문장』에 나타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단적인 예는 장정(裝幀)1이다. 『문장』총 26권의 장정은 두 가지 특색을 갖고 있다. 하나는 추사 김정희의 필체에서 골라낸 제자(題字)2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화가 김용준(金瑢浚)이 그린 표지서(表紙書)이다. 이렇게 공들여 장식한 『문장』의 표지가 의미하는 것이 한국적인 것 또는 동양적인 것이며 전통의 자발적인 계승을 내걸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장정은 조선시대의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정당성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의 심미적 문화를 초시대적인 고전의 기층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를 ‘조선적인 것’의 숭상, ‘상고주의(尙古主義)’라 부를 수 있다. 『문장』의 기획 편집을 이끌어가는 본질은 바로 상고주의이다. 창간호에서 이병기의 주해(註解)로 <한중록(恨中錄)>을 연재하며, 편집후기에 ‘이런 좋은 고전문학이 일반(一般)의 이목(耳目)을 피(避)해 묻혀 있었다는 것은 <한중록>의 또한 한사(恨事)였으려니와 아직도 사장명품(死藏名品)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우리의 탁월한 문화적 유산이 향수의 대상도, 연구의 대상도 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사정을 한탁하면서 ”영구(永久)히 소멸(消滅)되려는 작품(作品)을 발견해 다시 가치를 구하는“ 작업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문장』은 시·소설의 창작만이 아니라 우리 고전문학의 주해(註解)와 연구논문, 희귀자료를 적지 않게 발굴 게재했다. 그중 연재된 것만 해도, 이병기(李秉岐) 주해 <한중록(恨中錄)>(11회), 이병기(李秉岐) 주해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6회), 박지원(朴趾源) 원작 이윤재(李允宰) 초역 《도강록(渡江錄)》(10회), 양주동(梁柱東)의 〈근고동서기문선(近古東西奇文選)〉(9회), 춘향전집(春香傳集) <고사본(古寫本) 춘향전(春香傳)>(5회), 이희승(李熙昇)의 〈조선문학연구(朝鮮文學硏究)〉(3회), 고유섭(高裕燮)의 〈급월당잡지(汲月堂雜識)〉(5회), 이태준(李泰俊)의 〈문장강화(文章講話)〉(9회) 등을 볼 수 있다. 이중 <문장강화(文章講話)>는 8·15 후 박문서관(博文書館)(1946)에서 간행하여 6·25전까지 6만부 이상을 판매, 당시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주요 논문은 송석하(宋錫夏)의 〈봉산가면극본(鳳山假面劇本)〉(제18호), 조윤제(趙潤濟)의 〈조선소설사개요(朝鮮小說史槪要)〉(제19호), 손진태(孫晋泰)의 〈巫覡(무격)의 신가(神歌)〉(제19호), 이병기(李秉岐) 주해 《요로원야화(要路院夜話)》(제21호), 양주동(梁柱東)의 〈詞腦(사뇌)가(歌) 석주서설(釋註序說)〉(제22호), 정인승(鄭寅承)의 〈고대훈민정음(古代訓民正音)의 연구(硏究)〉(제22호), 이육사(李陸史, 호적(胡適) 원문(原文) 초역)의 〈중국문학오십년사(中國文學五十年史)〉(제23·26호), 조윤제(趙潤濟)의 〈설화문학고(說話文學考)〉(제25호), 이양하(李敭河)의 〈제임스 죠이스〉(제25호), 최현배(崔鉉培)의 〈한글의 비교연구(比較硏究)〉(제26호) 등과, 순한문(純漢文) 조선소설 《서대주전(鼠大州傳)》(제16호), 가극본(歌劇本) 《토별가(兎鱉歌)》(제17호) 등 고전 발굴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부록’으로 〈고시조선(古時調選)〉(200여 수 수록 : 제15호), 〈조선어문학명저해제(朝鮮語文學名著解題)〉(239종 : 제20호) 등이 있다. 제5호(1939. 6)에 발표된 유진오(兪鎭午)의 〈순수(純粹)에의 지향(指向)〉에 대하여 김동리(金東里)는 신인의 입장에서 제18호(1939. 8)에 〈순수이론(純粹異論)〉을 써서 반박했는데, 이는 당시 화제를 모았던 큰 논쟁이었다.


『문장』의 기획편집은 시조창작의 적극적인 후원에서 알 수 있다. 『문장』의 추천제도에서 시,소설 부문과 나란히 시조부문이 개설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대시조 옹호는 문장파에게 있어서 문학의 인식과 실천이 전통의 자발적인 계승 또는 ‘옛 것’(古)에 대한 숭상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장파는 고전을 그것의 물질적 기초와의 연관 아래서 그것을 산출한 시대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고전의 의의를 지금 –이곳 에서의 삶의 객관적 요청과 결부시켜 가늠하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태준이 <한중록>을 조선의 산문고전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챤챤하고 짜르르한 맛‘이 있고 ’전아(典雅)한 고치(古致)‘와 ’정(情)에 수곡(秀曲)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예로부터 떠받들어져 온 것이면 지금 역시 떠받들 만한 것이라는 소박한 논리를 좇아서 대상을 평가한다. 따라서 이런 이태준의 인상주의는 고전의 가치를 고전의 옛스러움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정지용에게 있어서 조선조 궁정사회에서 통용되던 삶의 기율은 시대의 격차를 넘어서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고풍스러운 어휘와 어투, 존칭보조어간의 사용을 통해서 ‘조선적(朝鮮的) 미덕’을 추억하고 숭배한다.


문장파를 매료시켰던 것은 조선시대의 삶의 총체성과 심미적 분위기였다.



『문장』의 장정이나 기획의도에는 고전의 이미지를 입혀 대중의 기호에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시장성을 갖춘 ‘고전 만들기’는 일견 문학인들의 반발을 불러올 듯 하면서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는 문장파 작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주의가 극히 주관적이고 그저 조선적인 것에 대한 향수의 자기탐닉으로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문장파의 상고주의는 조선조의 문화적 유산들의 수용을 통해서 문화 창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문장』은 일제강점의 말기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지키는 터전의 구실을 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황종연: 『文章』派 文學의 精神史的 性格 , 동악어문학학 21, 1986, p91-144

김용직: 『文章』과 文章派의 의식성향 고찰, <선청어문> 23권, 1995, p731-751

정주아: 『文章』誌에 나타난 ‘古典’의 의미 고찰, 규장각 제31집, 2007.12, p307-327

문장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잡지백년3, 현암사, 2004.5.15


裝幀(장정): 책의 표지(標識)나 면지(面紙)ㆍ도안(圖案)ㆍ색채(色彩)ㆍ싸개 등(等) 겉 모양을 꾸밈, 또는 그 꾸밈개 책의 형식면의 조화미를 꾸미는 기술임, 네이버 한자사전

題字(제자): 책머리나 족자(簇子), 비석(碑石) 등(等)에 쓴 글자 , 네이버 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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