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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moon Jan 01. 2023

두서없는 회고로 새해 서두를 열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는 2022 회고와 2023 다짐

이 회고에는 2가지가 없다. 숫자와 사진. 때론 기록보다 기억이 정확하다. 직관적인 느낌대로 떠올리는 2022년의 단편들, 아마도 텍스트만 빼곡할 생생한 순간들.


얼떨떨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올해 끝에는 이런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위로하며 외로운 시간을 견디던 때가 있었다.


12월 30일 만기 예정인 적금으로 호텔 룸서비스를 시켜 먹거나, 매년 챙겨보는 MBC 연예대상에 누가 대상인지 맞혀보거나, 햇볕으로 빳빳이 마른 침대 위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설을 맘껏 읽는 등 무용한 목적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들.


상상이 현실이 되니, 다소 얼떨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매번 기다리던 소식을 듣자마자 깨버리던 꿈인가 싶어 적어 내려가는 글.


올해의 OO 시리즈로 가득한 Instagram에 담기엔 헤비하고 나만 보는 Notion의 프라이빗한 메모로 남겨두기엔 라이트하므로. 작가 등단이 최종 목표가 아님에도 글 1편만 남기고 사라진 여기 이 brunch에다.



[2022] 돈, 이별, 불안


세 가지 키워드 간 별 접점은 없다. 또 결과적으로는 올해 마지막 염원하던 목표를 이루었으나 2022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고 있다. (돈 역시 양가적인 의미)


1) 돈


2022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돈'이다.


올해의 작품이라 꼽을 수 있는 tvN의 작은 아씨들. 날 서 있는 작가의 필력과 과감한 연출, 곳곳이 뾰족한 가운데 둥근 모서리를 만들었던 김고은 배우의 연기까지. 무엇보다 16부작 드라마를 완주한 적 없는 내겐 단 12편 만에 매듭짓는 속도감도 좋았다. 여기 나온 세상에 없는 세 자매는 돈 때문에 울고 웃었고,


2022년은 내게도 뜻밖의 목돈이 굴러 들어왔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도합 1천 500만원 정도. 올해 가장 행복했던 내 생일날 발가락 골절로 들어온 보험비. 일한 지 언 2년이 된 회사의 권고사직. 그리고 위로금. 애석하게도, 슬픈 계기로 생긴 돈은 편한 마음으로는 쓸 수가 없더라.  


어느덧 발가락은 아물었고 나는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서울 살이를 하는 게 내년 목표 중 하나다. 작은 아씨들 중 부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난 다 잃어도 이런 아파트만 있으면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얻고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이해가 되었던 말.


2) 이별


관계의 헤어짐이자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올해 초,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가깝게 지내다 영영 사이가 틀어졌다. 이 친구로 하여금 다른 친구랑도 싸우게 되고 목표했던 것들도 줄줄이 어긋나고.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구간 중 하나. (하반기로 가면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땐 몰랐지)


당시엔 충격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안타까운 감정만 남았다. 상대든 상황이든 스스로든. 변해야 할 부분은 그대로인데 기억하고 기대했던 모습은 변해버려서. 모든 관계의 끝맺음은 이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가도.


가치관.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맺을 때 점점 더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도덕적인 관념, 사람을 바라보는 자세, 인생과 인성을 논하는 기준 등.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이루는 사람들의 결, 일과 일 사이 속도와 온도, 솔직하고 투명한 대화.


'잘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 생각을 결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더없이 덧없이 다행이다.


3) 불안


'잠재적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오늘의 나 밖에 없다.'


앞선 이별(?)의 부단함을 채우기 위해 매일 쓰던 일기에 있던 메모. 올해 4분기는 불안 속에 살았다. 지난 선택값에 대한 후회, 당장 책임져야 할 것들의 우선순위, 더 이상 그려나가지 못하는 불투명한 미래. 매일 뉴스에 나오는 다가올 경제위기. 그 위기를 바로 직면한 사람이 나였다. 돈, 돈, 돈.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 이직 비수기라 일컬어지는 10월부터 12월까지, 딱 3개월. 진짜 미친 듯이 구직에만 몰두했다.


구직 과정에서도 나름 인생을 배웠는데,


1. 틀림이 아닌 다름


'기업마다 지원자 분을 파악하는 척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건으로 너무 실망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불합격 메일 양식은 정해져 있는지 기업들의 매번 비슷한 인사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 문구가 진심으로 와닿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회사는 1차에서 떨어졌다. 처음 본 직무와 시장, 명성만 보고 지원한 기업은 기대도 안 했는데 최종까지 갔다.


그때 느꼈다. 회사가 원하는 정답을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그냥 안 맞는 걸 수도 있겠다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2. 장점과 단점의 양가성


스물과 서른 사이. 종종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생긴다. 예컨대 성격인 부분. 면접 필수 질문 중 하나에 얼추 답할 만큼 이제 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은 알 나이가 됐다.


정해진 총량에서 최적의 배합을 찾는 것과 같은 문제다. 잘하는 걸 더 잘하도록 키워야 할지, 못하는 건 빠르게 인정하고 포기해야 할지. 이제라도 못하는 걸 잘하도록 부리나케 노력해야 할지 등. 두 자세를 모두 취하고 싶지만 어렵다. 스스로 인지하는 장단점은 상호 배타적인 기질이므로.


회사도 마찬가지다. 대개 원티드 기업 소개와 잡플래닛 리뷰는 자석의 N극-S극마냥 대립을 이룬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강점이면 사공이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약점이, 연령대가 젊고 꼰대가 없다는 장점은 대학 동아리 같은 분위기라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대개...)


어렵다.

0과 1뿐인 세상에서 0에 수렴해 가기까지.




이외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올해 6월, (이 글을 쓰는 중 2023년이 되는 바람에 앞으론 작년이라 칭한다) 발가락 골절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외금 생활로 요리를 시작했다. 덮밥, 토스트 등 비교적 간단한 한 끼 요리에 집중하다 10월부터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자 본격적으로 ‘밥솥’을 구매했다. 당근마켓에서 1만 5천원에. 목돈 대비 밥솥 가격은 1000배 저렴한데 그 행복감은 배가 되었다. 고구마나 달걀 삶기는 물론 그릭 요거트, 삼계죽, 크리스마스엔 케이크 시트도 만들었다. 사용해보지 않은 기능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찜' 기능. 올해(2023년)에는 밥솥으로 갈비찜에 도전할 것이다. 갈빗대 핏물 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네.


그리고 드디어 내 취향에 맞는 커피 향유 방법을 찾아냈다. 집에서 손수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서비스를 꾸려 나갔지만 애석하게도 내 커피 취향은 ‘캡슐 커피’였다. 채 잠이 깨지 않은 채 극강의 카페인 효율을 찾길 원하는 내겐 빠르고 간편한 캡슐이 짱이렸다. 그렇게 구입한 약 10만원 대 네스프레소 에센자 미니. 매일 평균 4개의 캡슐을 소비하고 지금까지 총 11개의 브랜드를 먹어봤다. (회고에 숫자 없기로 했는데 직업병이...) 그중 내 입맛에 가장 맞는 캡슐 커피는 로우키 샴페인 블렌드. 캡슐에선 신선한 산미를 기대하기 힘든데 그 어려운 걸 로우키가 해냈다.



마침내,

2022년도 잘 해내었다.




[2023] 건강, 기록, 관계


위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른 키워드들. 그중에 가장은 건강이어라.


1) 건강


건강은 정말로 '안' 좋아졌다.


과한 스트레스와 불규칙적인 생활패턴 등. 작년 2월, 개인 PT를 끝내고 비슷한 시기에 에스테틱도 중단하면서 (이건 운동은 아니지만) 맘 쓸 곳은 많은데 몸 쓸 곳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작년 하반기 3개월 동안은 잠을 편히 잔 적이 하루도 없는 것 같다. 최악의 고문은 불면이라 했던가. 잘 못 자면 잘못도 많이 한다. 못나지고, 모나진다.

 

그래서 올해는 꼭 건강을 잘 챙기고 싶다. 심신 단련하기. 그리고 잠 잘 자기. 욕심을 덜어내지 않아도 될 만큼 내 그릇을 키우기. 그게 어렵다면 비우는 방법을 터득하기. (근데 이건 득도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할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쯤엔 가능하려나)


지속적으로 취미를 붙일 만한 운동을 찾고 싶다. 이건 직접 해봐야 알 듯하여 1~2월 안에 접수할 예정이다. 가급적이면 서울에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종목이면 좋겠다.


2) 기록


꾸준히 기록하기. 사(事)적인 기록은 의무감에라도 하는데 사(私)적인 기록은 참 귀찮다. 작년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


1) 기록을 왜 해야 되는가? → 하기 귀찮으면 하지마!

2) 기록을 어떻게 하는가? → 기승전결의 완벽한 플롯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림


이 2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Instagram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는 어느새부턴가 24시간 안에 휘발되는 '스토리'만 올리게 되는데 그냥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멋진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대단한 영감을 받지 않아도 16 대 9 프레임에 오늘 하루를 채울 수 있어 부담이 없다.


BUT 내 작고 소중한 팔로워 분들께 강약 조절이 안 되는 스토리 테러에 눈치가 쓰이고... 비슷한 사람들, 비슷한 콘텐츠들. 획일화된 피드에 살짝 질려 인스타를 오랫동안 삭제하기도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이야기만 하게 되고.


이노션 트렌드 책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예시로 맞춤 추천의 한계를 언급했던 키워드가 있었다.(비욘드 알고리즘, 2021)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 없이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소비하다 보면 그 세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점점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국 꾸준한 기록을 위한 '플랫폼'에 대한 고민인 건데


1) 아예 긴 텍스트로 승부 보는 brunch

2) 짧은 영상만 올려도 부담 없는 YouTube Shorts


이 중 하나를 2023년에는 꾸준히 기록할 예정이다. 2가지 다 할 수도 있고.

특히 올해 만난 회사와 일에 대한 영감을 꾸준히 담고 싶다.



3) 관계


올해, 아니 작년은 많이 움츠러들었다. 새로운 사람은커녕 기존 인연들과도 안부 묻기 어려웠던 한 해. 올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티. 이 정체성이 곧 브랜딩을 이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사실, 대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대학원에서 공부도 좀 더 하고 싶고 궁극적으론 모교에 돌아가 후배들을 만나고 싶다. 어떤 형태든. 가장 멋있게 나이 드는 명예로운 삶으로.


고작 서른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갔다. 오버해서 말하면 20대까지가 무언의 끝일 것 같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간 스물 한 살부터 시간이 가는 게 두려웠다. 이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십 대 중반에 번아웃을 겪고 기력이 떨어진 후반부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무력하고 무기력했던 지난날들.


그래서 더 기대되는 삼십 대.

2023년보다 2024년이 더 기다려진다.

열렬했던 이십 대를 여유로이 보내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아홉수를 잘 견디고 이사하리라.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 대사들로 갈무리하기.



버려야 또 채워지지.


계절 변해가는 거 잘 느끼고.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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