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여, 안녕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82년 개띠. 아직 만 나이 30대라고 개답게(?) 물고 늘어져 왔지만, 이제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고 쿨하게 보내 주렵니다.
나의 30대여, 안녕!
제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또 하나의 중요한 장이 막을 내린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나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일 딱 두 가지만 꼽아 봅니다.
하나는 학창 시절 계속 반장을 해 왔던 경험입니다.
반장을 하면서 지금 제 성격의 상당 부분이 형성되었는데요.
반 친구들, 학생회 사람들, 선생님들과 별 탈 없이 두루 친하게 지내고 신뢰를 얻으면서도 그들에게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랑 까진 날라리(?) 친구부터 가장 조용한 친구까지, 깐깐하고 무서운 선생님부터 헐렁(?)한 선생님까지 등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얻는 방법,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 어떠한 일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방법, 갈등을 푸는 방법 등 교과과정에서는 배우지 않지만 살면서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인정과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였기에, 어떠한 행동이나 판단을 함에 있어 저의 시선은 늘 외부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걸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저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제 스스로 중심 잡지 못했기에 늘 외부의 반응에 크게 흔들렸습니다.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아무리 제 스스로 뿌듯하더라도 그건 성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남들의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했기에, 이미 그 당시 저의 관종력과 관종 스킬(!)은 상당히 완성단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엄마의 사업실패를 통한 바닥 경험입니다.
이건 제가 몇 차례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에 글로도 남겼는데요. 늘 시선이 외부로만 향하면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회피해온 저에게, 온전히 진실한 저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 준 귀한 경험입니다.
20대 후반부터 결혼 전인 33세 정도까지의 일이니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빠가 평생을 성실히 공무원 생활하며 마련한 보금자리, 제가 7살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살아온 목동의 한 아파트를 경매로 넘기고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며, 손에 쥔 500만 원으로 신림동 고시촌 산 꼭대기 월세방을 알아보던 그때의 장면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빠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엄마와 여동생 셋이 살기에 그곳은 하루하루가 참 무서웠습니다.
월세를 밀리고 전기세도 밀려 보관하던 오래된 버너에 라면을 끓여먹고 양초로 집안을 밝히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 벌어질지는 몰랐습니다. 그 허름한 집에서 나와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금수저들 즐비한 사법연수원으로 향하는 길이 어찌나 괴롭던지요. 안 그래도 외부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저에게는 버티기 어려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저의 상황들을 숨기기 바빴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굴 만나 내 사정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자존심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어서 그저 돈 안 드는 방법으로 틈만 나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과연 고난일까? 내가 내 상황을 힘들다고만 규정지은 것은 아닐까?’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겪는 이 일들은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덕분에 누구의 인정 없이도 나 스스로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동력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믿어주기 이전에 나 스스로 나를 믿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도요. 그리고 누구나 겪는 ‘고난’이라는 것이 결코 부끄러워 숨길 일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오히려 서슴없이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며, 그 고난을 극복한 나만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세상에는 금전적, 물질적 가치 외에 너무나 찬란하고 소중한 가치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누구와 비교 불가능한 세상 유일한 존재라는 것, 그렇게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나 자신을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하며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향기를 풍길 귀한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나 스스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도 정말 귀하고 존중받아야 할 특별한 존재들이지요. 당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 밖에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40년 동안 참 많은 경험들을 해 왔습니다. 아직도 계속 다방면에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의 저이지만, 제가 제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제가 잘나서,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저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리고 계속 저를 형성해 나가는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시는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여러분 덕입니다. 그래서 40세를 맞이하는 생일을 핑계 삼아 마음 깊이 여러분들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늘 저의 순간순간 저와 함께 해 주시는 아빠께도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엄마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서 직접 말씀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이 글을 마치고 어떻게 표현을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내 가장 귀한 보물인 남편과 두 아이에게 오늘 하루 종일 사랑 듬뿍 줄 예정입니다. 제 마음 헛헛함 없이 늘 따뜻함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존재들입니다.
덧) 저의 두 번째 경험에 대해 울면서 온 진심을 쏟아냈던 글입니다. 고난의 과정에 계신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시 공유합니다. 모두 행복한 명절 휴일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