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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Jun 21. 2023

우리 사이에 정이 있다면

모녀 사이에 꼭 있다는 두 가지 정이 있다.

고운 정과 미운 정이다. 부모 자식 간에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진 건 고운 정이고 부모의 바람대로 따라가지 않는 자식,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물질적 정신적 사랑에 부합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마찰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잘한 싸움들이 켜켜이 쌓여 끊어낼 수 없는 미운 정이다.


과거 엄마와의 관계가 흔들리는 일을 자주 겪었다. 첫 아이를 낳았는데 엄마가 되면 당연히 내 아이가 사랑스럽고 헌신적으로 되는 줄만 알았다. 우는 아이 달랠 때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내 능력을 의심했다. 의심은 어이없게도 엄마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나 어릴 때 울보 이상급으로 참 많이 울었는데 엄마는 당연하고 우는 나를 달래려고 포근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집안에 없었다. 여자애가 큰소리 내며 울면 안 되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들으면 화낸다고 얼른 그치라고 다그치는 말 뿐이었다.

내 울음은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뭐가 속상한지, 억울한지, 슬픈지, 힘든지 한 번은 물어보고 들어보고 안아줄 여유가 그렇게 없었나 싶다. 이런 돌봄 받지 못했다는 기억이 첫아이를 낳고 나를 옭아매기 시작하더니 엄마한테 원망이 쌓여가다가 육아나 살림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면 꼭 폭발해 버렸다. 여전히 힘든 말을 꺼낼 때면 너만 애 키우는 거 아니다, 엄마는 너희들 넷을 키웠는데 고작 그것 갖고 그러냐는 말은 내 울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했다.


나이만 먹었지 속은 텅 빈 어른으로 자란 건가 자책도 많이 했다. 아직 엄마한테 의지하고 있는 내 마음이 독립을 못해서였다. 결혼으로 가정을 꾸려 몸은 벗어났지만 정신은 아직 엄마 치맛자락 꼭 잡고 놓기 싫은 어린아이 그대로였다.


한동안 이 정서가 오래 지속됐고 지지부지하게 엄마와 다툼도 많았는데 원망이란 감정을 오래 안고 있는 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거라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준비를 단단히 하자였다. 수없이 읽은 책에서 만난 사람들은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 그 괜찮음을 나는 못 받아들이고 겉도는 삶을 살았더라. 허비한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나를 돌봄에 있어서 더욱 박차를 가할 마음에 준비는 되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은희경 -새의 선물-p136

모녀 사이엔 질긴 감정이 존재한다. 허물없이 부대깨는 조건 없는 미운 정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불쑥 올라오는 엄마와의 질긴 감정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내 방식대로 글을 쓴다. 질긴 감정들을 조금씩 매만져 끊어내진 않지만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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