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날엔 조용히, 쉬엄쉬엄 하던 집안일에 가속도가 붙는다. 느지막이 건조기에서 꺼내 거실에 던져두었다가 개던 빨래도, 빨래통에 넘쳐흐르던 옷들도, 청소기도 평소엔 잘 안 보던 구석도 한번 더 본다.
내친김에 옷걸이가 된 의자와 책상에 책과 뒤엉킨 화장품, 애들 문제집도 치웠다. 쌓인 먼지가 그동안엔 잘 안 보였는데 노트북 자판, 블루투스키보드, 스탠드,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다. 책상엔 늘 물티슈가 놓여 있었는데 이제야 제 할 일을 찾는다.
나한테 청소는 각 잡힌 정리보다 물건을 비워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청소 살림으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도 내가 그 사람들을 따라가긴 벅차다. 그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을뿐더러 왠지 시작하려면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게 분명한데 그곳에 에너지를 쓰기가 아깝게 느껴진다. 이건 그냥 내가 게으른 거고 생긴 대로 살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책상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면서 애들한테 는 엄청 잔소리를 했다. 특히 둘째가 심각한데, 숙제랑 군것질하고 안 버린 껍질, 지우개가루, 무질서한 연필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꼴이다.
둘째 방에만 들어가면 한숨부터 나오니 이건 정리 정돈 감각 없는 나를 닮은 게 분명하다. 하필 이런 걸 닮고 그러니?
내가 정리를 그렇다고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책상을 치우고 먼지를 닦으며 생각했다.
아, 비우고 닦아 놓으니 이제야 내 공간 답구나.
아무 데나 앉아서 읽던 책, 책상 두고 식탁에서 쓰던 블로그, 애들 학원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서 있어 보이고 싶었던 마음들. 내 태도 또한 정리되지 못한 거 투성이었다.
저게 정리한 거야? 정리 시작 전 아니고?라고 생각한다면 맞다. 정리한 거다.
일단 목표는 이번 주말까지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추가로 쌓아 놓는 물건이 부디 나흘동안은 참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