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와 잘못된 만남. 너무 힘들어요.
500일 동안 떠돌아다녔더니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다. 재밌고 즐거웠던 일도 많았지만, 소매치기와 구두닦이 사기, 아이폰 잃어버리기까지.. 안 좋은 일도 많았다.
그중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숙소! 내가 귀국 후 현재의 회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숙소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먼저 방문해야 할 도시를 정하고, 교통수단을 예약하고, 대략적인 일정을 정한 뒤... 그제야 우리 동선을 고려한 위치의 숙소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나, 좋은 위치의 숙소는 당연히 비싸다.
장기 여행자로서 한정된 예산 범위 내 숙소를 찾다 보면 중심가에서 멀고 평점이 조금 떨어지는 곳을 예약하게 된다. 그리고 후회의 반복. '다음엔 돈을 더 쓰더라도 괜찮은 곳으로 예약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숙소, 이렇게 당했다. 첫 번째, 에어비앤비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접한 것이 에어비앤비와 우버였다. 특히 에어비앤비는 한국에 돌아가면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합리적인 가격과 시스템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여행 중 잘 사용하던 에어비앤비에도 문제점은 있었으니! 사건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특히나 숙소 가격이 비쌌다. 호스텔 1인 5만 원이 넘을 정도. 비싼 가격에 두 명인 우리는 당연히 호스텔보다 에어비앤비를 찾게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시내에서 멀지 않았다. '위치도 좋고, 방도 깔끔한 것 같은데 왜 가격이 저렴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여태껏 에어비앤비를 잘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찾았을 거라 생각하고 별 의심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아파트 외부는 깔끔했다. 조금 낡아 보이긴 했지만 쿠바의 아파트에서도 머물렀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문제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발생했다. 호스트와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뭐지?
첫 번째로는 사진의 모습과 실제 우리가 사용할 방의 모습이 달랐다. 왜 다르냐라고 물었더니 우리를 끝으로 에어비앤비를 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에 가구를 뺐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한테 미리 말했어야 했던 거 아니야?
두 번째는 사진으로 알 수 없는 냄새. 쾌쾌한 곰팡이와 담배 냄새가 집에 가득했고 방 청소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 우리 이후로 에어비앤비를 안 할 생각이라는데, 후기에 신경 쓸 리가 없지.'
결국 짐을 방에 두고 밖으로 나와 다른 숙소를 알아봤다. 바르셀로나는 성수기였고, 당일에 방을 구하는 거라 호스텔도 1박에 1인당 7만 원 정도였다. 그마저도 방이 없어서 문제. 여기저기 다녀보고 한 군데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 예약한 후 바로 에어비앤비에 연락을 했다. 예약한 곳이 이미지와 달라 도저히 머물 수 없다고. 환불을 해달라고. 물론 증빙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호스트에게 취소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호스트는 '체크인한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이 문제는 에어비앤비와 얘기하겠다.' 하고 나왔다.
다행히 룸 컨디션이 다른 것은 환불이 가능하다. 다만 환불받는데 1개월이 넘게 소요되었고, 우리는 바르셀로나 첫째 날의 시간과 돈을 2배 이상으로 낭비했다.
아끼기 위해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값을 지불한 꼴이 되었다.
숙소, 이렇게 당했다. 두 번째, 베드 버그
말로만 듣던 베드 버그를 처음 만났다. 남미나 유럽 여행자라면 꼭 한번 경고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미 유럽의 몇몇 도시를 방문할 때, 호스텔의 베드 버그 확인 매뉴얼도 있을 정도.
하지만, 우리는 베드 버그가 많이 나온다는 유럽도, 남미도 무사히 넘겼는데 그 더운 아프리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로코에서 만나버렸다. 심지어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니었다. 위치와 평점이 좋아 예약한 숙소였다.
모로코에 도착하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눈 앞으로 벌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손으로 눌렀는데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베드 버그는 원래 흰색인데 피를 먹으면 붉게 변해 피가 터져 나와"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불을 걷어 보니 침대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고 매니저에게 따졌다. 매니저는 사과를 하며 지금 여분의 방이 없어서 방을 소독해주겠다고 했다. 빨래도 다 해주겠다며 다음날에도 또 나온다면 돈을 받지 않겠다며 공언했다.
이런 능숙한 대처가 좋았지만, 한 편으론 '이 일이 자주 일어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소독까지 했는데 또 나올까. 불안한 상태로 잠을 청했는데 기분이 이상해 새벽에 잠에서 깼다. 아. 또 베드 버그다.
짐을 다 챙겨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리셉션에는 지난번 우리와 얘기한 매니저가 없고 다른 직원이 있어 베드 버그가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자신은 들은 바가 없다며 체크아웃하는 날이니 돈을 내라고 했다.
한바탕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그 직원은 우리에게 욕설을 하며 그냥 가라고 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에는 온통 물린 자국 투성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해당 숙소 리뷰에 몇몇 베드 버그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그렇게 꼼꼼히 체크를 했는데도 놓쳤다. 이미 예약한 숙소도 다시 보자. 숙소를 잘못 선택한 몫은 온전히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숙소, 이렇게 당했다. 세 번째 위험과 불편의 공존
워스트 중에 워스트였다. 위험한 케냐의 나이로비 숙소.
그 숙소를 알게 된 것은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였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했었고 높은 만족도를 보였던 그 숙소. HOTEL AFRICANA 2006.
나이로비 시내와 가까웠고 가격이 엄청 저렴했다. 처음 2박을 하고 사파리 투어를 다녀온 후 다시 1박, 총 3일을 머물렀다.
시설은 노후하고 화장실은 더러웠지만 그래도 싸니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새도록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거리에서 싸우는 듯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층마다 철장을 쳐서 관리하고 있었다.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여행사로 복귀했다.
"너네 숙소가 어디야?"
"우리 숙소는 HOTEL AFRICANA 2006. 여기서 가까워."
"어? 거기야?" 담당자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어두워져서 외국인이 그 거리를 가기엔 위험해. 우리 직원이 함께 동행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거기가 위험한 곳이었어??"
"너희 저녁 안 먹었지? 근처에서 저녁을 사서 가자. 오늘은 호텔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위험성을 알고 나니 숙소 밖으로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파리 투어를 하고 오면서 긴장감이 풀렸는지 몸도 안 좋아졌다. 청결과 위치, 불편한 침대에 거리의 소음까지. 회복이 될 리가 만무했다.
결국 참다못해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이 곳보다 조용할 거야.
결과는 대만족. HOTEL AFRICANA 2006에서 볼 수 없었던 외국인 여행자들이 모두 이 곳에 모여 있었다. 숙소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도 회복했다.
시설도 청결도 서비스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래서 여행에서 숙소가 중요하구나. 힘든 곳일수록 좋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여행에서 숙소의 중요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의 동선에 숙소를 우선적으로 두게 되었고, 예산을 오버하더라도 리뷰를 검토하고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숙소가 좋았던 곳은 도시가 별 로더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숙소가 안 좋으면 도시가 좋았더라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도시의 첫인상이자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이 결국 숙소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이 해외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다. 돈 좀 쓰더라도 좋은 곳에 머물러라. 우리처럼 500일 정도 배낭여행할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