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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09. 2023

나와 마주하기 6. 코로나와 재택

코로나 기간 중 가장 큰 변화는 재택 근무였다. 코로나 전에도 우리회사는 재택을 할 수 있긴 했다. 아주 가끔? 한달에 한번 눈치껏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2019년 새해가 밝을 때 부서장이 다른 부서 눈치 보인다며 없앴던 기억이 있다. 외국계 회사였던 우리회사도 그랬는데 남편네 회사는 오죽했을까. 전통적인 사내 문화를 가진 국내사에 근무하던 남편은 재택 근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엔 사실 딱히 출근이 필요하지 않은 직군이었는데도 굳이 여기저기 이동해서 근무를 하곤 했다. 

그런 우리가 코로나 19 때문에 어쩌다보니 전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때마침 재택근무가 시작된 것은 따스한 봄날이었다. 미세먼지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참 좋았다.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로 나갈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재택근무라 초기엔 업무량도 많지 않아 집안에서 멍때리고 앉아있곤 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너무 좋을때에는, 예를들면 벚꽃이 날리던 그런 시기에는... 점심시간에 둘이 손잡고 집밖으로 나서곤 했다. 마스크로 꼭꼭 코와 입을 가린채 나선 곳은 아파트 단지였다. 단지내에는 제법 벚꽃나무를 잘 심어둔 곳들이 있었다. 그런곳들을 찾아서 벚꽃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파란 하늘 아래 희고 여린 벚꽃잎이 날렸다. 추리닝에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사진도 한 두장 찍었다. 점심시간의 기쁨이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주상복합이었어서 상가의 옥상인 4층은 옥상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린이들이 가끔 놀러오곤 했지만 주로 그곳은 한적했다. 어느날 씨끄러운 공사소리가 나더니 상가에 공차가 들어섰다. 요즘같은 시기에 매장 오픈이라니, 용감하다 싶었다. 집근처에 오픈했으니 한번 가줘야지. 키오스크로 버블티 두잔을 시키고 집으로 향하다 옥상정원에서 마시고 갈까? 하고 4층으로 갔다. 6월의 여름날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 외출이 어려웠어서 그때는 작은 옥상정원이 우리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홀짝홀짝 버블티를 마시다보니 어느세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원한 티를 마시며 촉촉히 내리는 초여름의 빗방울을 보는건 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소나기 같으니 금방 그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점점 빗방울은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들어왔던 작은 지붕 아래는 굵은 빗방울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좁아졌다. 


처음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있다가, 비를 피해서 서서히 가까이 붙다가, 종국에는 거의 껴안다시피하며 겨우겨우 비를 피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차라리 얼른 뛰어서 집에 가자! 하고 결국은 비맞으며 집으로 뛰어갔다. 얼마나 웃겼던지 집에 와서도 점점 좁아지던 우리의 거리를 말하며 몇번이나 다시 웃곤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비에게 고맙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재택근무도 길어졌다. 점심 메뉴가 다 지겨울때, 우리는 종종 서브웨이에 가곤했다. 어느게 칼로리가 낮은지 의미없는 비교를 하며 샌드위치를 고르고, 나름 건강해보이는 메뉴를 나란히 앉아서 먹곤 했다. 서브웨이에서 집까지 다시가는 5분. 그 5분이 너무 좋아서 빙빙 돌며 10분으로 만들며 돌아가곤 했다. 나란히 마주앉아 일을 하는 순간도 좋지만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다보니 계속 함께한다는 실감은 하지 못했던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친한 동료와 함께 점심먹는 시간이 제일 좋듯 재택 근무 시간에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평일에도, 일을 하다가 남편과 편안한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는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벌써 2년이 지난 이야기다. 우리는 그 사이에 이사를 했고, 코로나로 인한 행동 제약은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서서히 사무실로 출근하는 빈도가 높아져 둘이 나란히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을 찾기가 어렵고, 이사온 집 근처에는 서브웨이가 없어서 예전처럼 나란히 샌드위치를 사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더 애틋하다. 코로나 유행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많은 기회를 뺏었고, 많은걸 바꾼... 정말 21세기에 나쁜 사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에게는 좋은 기억을 몇가지 남겨주기도 했다. 앞서 말한 그런 것들 말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벚꽃잎이나 별로 맛도 없지만 그래도 나름 별미라며 찾아먹던 서브웨이같은. 오랜만에 점심으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데 그 때의 그 맛이 나서 추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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