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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Nov 11. 2021

나와 마주하기 5. 잊을 수 없는 장면

할머니, 내 할머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딘가에 나설때면 카메라를 골라잡곤 합니다. 친구와 함께 나설 땐 인물 사진을 찍기 좋은 DSLR로, 가벼운 여행을 갈때는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로, 볕이 좋은 날에는 필름 카메라를 집어듭니다.


 그 날은 볕이 좋았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가방에 담은 채 길을 나섰으니까요. 엄마랑 같이 놀러가는 길이었습니다. 엄마는 놀러가기 전 외할머니의 병원에 들리자고 말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전형적인 우리시절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조금은 억세고, 고집도 부리고 목소리도 크고. 하지만 꼭 잡아주는 손아귀힘은 단단했고, 무엇보다 따듯했습니다. 잔소리는 많았지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싶어 안달인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어릴적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 내 방에서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종종 할머니는 코를 곯았고, 어린 시절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마냥 그립기만 하네요.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지내신지 3년이 되었던 해였습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맑지 않았어요. 나를 보고서 누구시냐 하기도 했고, 가끔은 알아보시는듯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손주 손녀들은 몰라도 나랑 오빠는 간혹 기억하는것 같을때 뿌듯하고 기뻤어요. 나를 더 기억해줘요, 할머니 잊지 말아요. 아기처럼 구는 할머니에게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잘 익은 감을 깎아드렸습니다. 내가 잡는 손을 더 꼭 잡아주는 할머니. 한참을 앉아 있다 나는 눈물이 터졌고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고 있으려니 엄마도 눈물을 훔치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는 이제 돌아가자며 짐을 챙겼습니다. 할머니는 가지말라는 듯 꼭 쥐고 있던 손을 놓아주고 바쁜데 얼른 들어가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병실을 나서려다 뒤돌아  보았을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할머니는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창가에서 볕이 들어오고 다정하게 웃어주는 할머니, 내 할머니. 치매가 오신 이후로 할머니는 표정을 잃었었기에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서자마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사진으로 찍어둘걸.


 사진을 찍다보면 많은 순간에서 아 이렇게 찍을걸, 아 이 장면도 찍을걸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후회가 되는 경우는 없어요. 이미 촬영한 장면을 더 잘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 만큼은 달라요.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란 오후의 햇볕이 들어오던 창가에서 주황색으로 물든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갸냘픈 몸을 침대에 기대고서 조용히 인사를 해주던 우리 할머니. 이따끔씩 마음속에서 떠오릅니다. 다시 돌아가서 한번만 더 안아드릴걸. 다시 돌아가서 사진으로 남길걸. 이 후회는 지우지 못할거에요. 외할머니는 얼마 후 내가 신혼여행을 간 사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슬퍼할 나를 걱정해서 엄마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2주가 넘게 지나고서야 사실을 알렸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눈물도 슬픔도 밀려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산 시골 동네로 가면 할머니가 계실 것 같았어요.


 오늘 밤 처럼, 문득 문득 그 날의 장면이 선명히 떠오르는 날이면 할머니와 다시 이별하는 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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