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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락 Apr 10. 2023

L과 R의 어떤 하루

우리는 누구일까요?


가로 6cm X 세로 약 4cm 정도 되는 작은 집. 나의 주인은 계절이 크게 바뀔 때마다 집단장을 새로 해준다. 겨우내 보송보송 병아리처럼 노란 솜뭉치를 달고 있던 우리집 현관은, 날이 제법 더워지면 어떤 컬러와 장식으로 새치장을 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나는 쌍둥이 형제 R과 함께 각자의 몸집에 꼭 맞는 맞춤형 방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주인이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면 - 사실 어떤 때 보면 흐느적거리는 좀비같기도 하고, 어깨 위에 곰 한마리를 얹고 마지못해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 아무튼 우리도 아침을 열 준비를 해야한다.



오른손잡이인 주인은 늘상 나보다 R을 먼저 찾곤 한다. 하나, 둘, 달칵! 찰나의 아침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면 잠깐의 정적과 함께 암전이 찾아온다. 찌릿 찌리릿 - 발끝부터 느껴지는 미세한 전류의 감각이 느껴지면 이제 내가 나설 타이밍. 나와 R의 입은 주인이 선택한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최대한 섬세하고 알맞게 노래하기 시작한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음량과 리듬으로 주인의 기분과 발걸음을 띄워주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다.






4-50분 정도의 오전 일과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나의 주인은 한번 꽂힌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고 또 듣는 취향이 있는데 요즘 빠져든 곡은 Anja Kotar의 <April>이라는 팝송이다. R과 나는 영어로 된 노랫말까지 다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ㅋ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7fx9_kT8P98




그러고보니 몇 번인가, 내가 배가 고파 제때 음악을 들려드리지 못한 경험을 한 뒤로 주인은 내게 밥 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의식적으로 챙겨주고 있다. 역시, 힘 없고 지칠 땐 주인을 바라보며 있는 힘껏 드러눕는(....) 퍼포먼스도 필요하다.



어쨌든 지나치게 열일을 시키지도 않으면서 (말인 즉슨 견딜만한 노동강도라는 것) 매일의 의식처럼 우리의 몸을 알콜솜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우리를 통해 삶을 리프레시하며 하루하루 활력을 더해가는 단발머리 주인이 - 나는 참 맘에 든다 :) 가끔 삐그덕거릴 때도 있지만, 가능한 오랫동안 그녀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의 작고 가벼운 루틴이 오늘처럼 계속되길 바란다.







 문득 공유하고 싶은 4월의 플레이리스트.


01. 영화 <원스 ost> Falling Slowly

02. MAX - Acid Dreams (Feat. Felly)

03. 조원선 (롤러코스터) - 원더우먼

04. 롤러코스터 - 무지개

05. 스텔라장 - L'Amour, Les Baguettes,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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