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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Jan 12. 2022

미국에서 한국까지 40시간 걸렸습니다

당신의 가장 최악의 비행 경험은 무엇입니까?

2014년부터 꾸준히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비행기 예매'에 관련된 내용이다.


'비행기 예매는 언제 해야 좋은가?'

'어떤 항공사를 이용해야 좋은가?'

'비행기는 어떻게 예매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올 연말 큰 코 깨지고 말았다. 내 여행 역사에 최악의 비행 경험으로 기록될 경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나는 미국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애틀에서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며칠 안된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계획했던 여행 스케줄과 함께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친구와 그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비행기를 캔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인천에서 시애틀까지 직항이 있는 아시아나 항공과 캐나다 밴쿠버 경유가 포함된 에어 캐나다 사이에서 조금 고민했지만, 50만 원의 가격 차이에 캐나다도 잠시 들를 겸 에어 캐나다를 선택했다.

그때 나는 이 선택이 나의 2021년 마지막 일주일을 통째로 잡아 삼켜먹을 최악의 선택이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북미 항공사의 평판은 좋지 못하다. 한 번이라도 델타 항공이나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케줄이 자주 변동되고 객실 승무원의 서비스도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항공사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 미국과 캐나다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에어 캐나다를 타고 알게 되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연휴 일주일 전에 미국에 도착해 캐나다 밴쿠버를 비롯해 시애틀 근교도 둘러보며 오랜만에 미국 여행을 즐기고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아보기도 했으며, 친구 가족들과 여유로운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

크리스마스 이브, 시애틀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평소 눈이 잘 안 오기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크리스마스에 맞춰 눈이 온다는 것은 즐거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눈을 잘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이라는 점이 나의 여행에 치명타를 가져다주었다.

시애틀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 덕분에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집에서 느긋하게 보냈다.


내 귀국편은 12월 27일 출발 비행기였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를 경유해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크리스마스 연휴인 23일 오후부터 거의 모든 것들이 문 닫기 시작하는 미국의 스케줄에 맞춰 미리 PCR 검사를 받아 놓는다는 것이 내 발목을 잡아 27일에는 PCR 검사 결과의 유효기간이 지나 PCR 검사를 새로 받아야 했다. 경유지인 캐나다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경유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4일부터 신나게 눈이 온 시애틀에서는 27일, 폭설로 인해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시설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것이다. 겨울의 북유럽을 1년 전 경험한 나로서는 이게 무슨 폭설인가 싶을 정도로 적은 강설량이었지만 아마 크리스마스 연휴부터 연말까지 쭉 쉬고 싶었을 많은 시애틀 시민들에게는 지금의 눈이 아름다운 핑곗거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27일 비행기를 30일로 미루고, '올해 안에는 다시 한국 땅을 밟자.'라는 심정으로 시애틀 시내를 이틀 내내 돌아다니며 겨우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30일 아침, 나는 또다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을 찾았다.


출국을 위해 두 번째로 찾게 된 시애틀 타코마 국제 공항


시작은 순조로웠다. 

PCR 검사를 새로 받아 온 나를 본 에어 캐나다의 지상 승무원은 고생했다며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경유지가 있는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는 승객들은 경유지의 경유 조건과 입국하는 나라의 입국 조건에 모두 맞춘 PCR 검사 결과 등을 비롯한 서류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체크인 카운터는 카오스와 같았지만, 이 절차를 두 번째 경험하는 나는 이미 지상 승무원과도 눈도장을 찍어 두었기 때문에 편하게 체크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고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의 예상 탑승 시간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탑승 게이트에 도착한 에어 캐나다의 지상 승무원은 "죄송합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지만 비행기가 도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착할 비행기와도 교신할 수 없는 상태라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비행기가 캔슬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가까워왔는데도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다니... 언제쯤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그렇게 그 조금만이 한 시간 이상이 될 무렵, 지상 승무원은 탑승 게이트의 변경을 안내해주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새로운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30일 아침 시애틀 타코마 국제 공항. 탑승 게이트에서 하염없이 내가 탈 비행기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는데도 공항은 카오스와 같았다


이쯤 되자 슬슬 경유편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오전 10시 반에 시애틀을 출발해 11시 반에 밴쿠버에 도착하면 오후 1시에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야 했지만,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애틀 시내에서 출발한 지 6시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탑승 게이트의 지상 승무원에게 내 비행기 스케줄을 보여주며 상황을 묻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는 현재 지연 없이 출발할 예정이긴 하나 밴쿠버에 도착하면 지상 승무원이 비행기표를 새로 바꿔줄 예정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내 여행 경험에 비추어보아 대부분 국제선 경유편에 타야 할 탑승객이 그 전 비행기의 지연으로 인해 도착이 늦어지게 된다면 경유편이 기다려주는 상황이 많았기에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 인천으로 가야 하는 탑승객도 나 말고 열 팀 정도 보였기에 적지 않은 숫자의 탑승객이기도 해 밴쿠버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지상 승무원이 비행기표를 새로 바꿔줄 예정이라니 밴쿠버에 도착하면 에어 캐나다의 지상 승무원이 도착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는 오후 1시 반에 시애틀 공항의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예정 출발시간을 3시간이나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문자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이 문자는 나의 기대감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인천에서 밴쿠버로 떠나는 비행기는 내가 밴쿠버 공항에 도착할 30분 전인 오후 2시에 이미 밴쿠버 공항을 떠난 것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험난한 캐나다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시애틀 시내를 떠난 지 이미 8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밴쿠버 공항도 이미 카오스 상태였다. 겨우 찾은 국제선 체크인 카운터의 북적임은 이미 내 험난한 캐나다 여행기를 암시해주었다.



한국에 도착해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나서 며칠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를 포함해 연말연시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여객기의 지연과 운항 취소가 하루 평균 2천 건에 달했다고 한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자가격리 등으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항공사 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연휴가 서양 문화권에서는 일 년 중 가장 큰 연휴인만큼 이 기간 동안 미국 내 여객기의 하루 이용객은 이미 코로나 전의 이용객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군다나 평소에 내리지도 않는 눈이 며칠간 내린 기상상황이라니.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에 가족들을 만나 편안한 시간을 보낼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의 스케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또 한 번 망쳐지는 상황이 올해도 발생하고 말았다.
나를 포함해. 벌써 2년 째다.


밴쿠버에서 오도 가도 못한 상황에 빠진 나에게 에어 캐나다는 새로운 비행기표를 첨부한 한 통의 메일을 보내주었다. 오늘 밤 밴쿠버에서 캘거리를 경유해 토론토로 이동하면 내일 아침 토론토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직항을 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북미 대륙 서부에 위치한 미국의 시애틀이나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인천으로 직항을 탑승하게 되면 11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북미 대륙 동부에 위치한 토론토까지 밤새 걸려 도착해 토론토에서 다시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가라고? 태평양만 건너면 되는데 캐나다를 왕복하라고?


밴쿠버 공항의 에어 캐나다 국내선 체크인 카운터, 고객 센터, 국제선 체크인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현재 비행기들이 전부 연착되거나 취소되고 있어 어쩔 수 없다.', '근무하고 있는 승무원이나 조종사가 적어 어쩔 수 없다.', '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대답뿐이었다. 


나의 선택지는 그저 에어 캐나다가 정해준 비행 스케줄대로 비행기에 세 번이나 몸을 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지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하겠지만, 당시에는 11시간의 비행시간이 20시간으로 두 배나 불어났고, 공항 대기 시간은 15시간을 육박하는 데다 결국 시애틀에서 출발한 지 3일이 지난 새해 첫날 오후에야 한국에 도착하게 되는 스케줄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에어 캐나다의 지상 승무원은 20달러의 푸드 바우처를 나에게 쥐어 주며, 앞으로 비행시간이 기니 우선은 뭐라도 먹으며 쉬라고 했다. 이 사람은 공항에서 햄버거 세트 하나를 사 먹으면 10달러 넘는 가격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공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음료 한 잔과 빵 하나면 10달러가 넘는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20달러의 바우처가 나의 3일을 위로해줄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국내선 탑승 게이트에서 하염없이 캘거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이 비행기는 원래 내가 탈 비행기가 아닌데...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탔는데 아직도 한 번 더 갈아타야 해."라고 불평의 목소리를 내는 승객들과 "나 또 바로 비행기 타야 해. 이번 주 스케줄 때문에 죽을 것 같아."라며 동료 지상 승무원에게 짧게 인사하면서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객실 승무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30일 저녁 9시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다시 시작된 내 비행은 31일 새벽 12시, 나를 처음 들어본 캘거리라는 동네에 떨어트려 주었고, 새벽 2시 반이 되어 캘거리에서 다시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자 아침 8시 반이 되어 토론토에 도착했다. 시차를 포함해 12시간에 걸쳐 나는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했다.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캘거리에서 다시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 안. 인천으로 가고 싶은데 반대방향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는 내 처지가 우스웠다.
난생 처음 와 본 캐나다 캘거리. 3장의 비행기 티켓을 들고,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무사히 왔다. 밤 사이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토론토에서는 뭐라도 먹어야 했다.


북미는 서부와 동부의 분위기가 다른만큼 캐나다 동부에도 한 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토론토 공항에서 202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의 아침을 맞고 비몽사몽의 상태로 다시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비행 스케줄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비행기였다. 

결국 '올해 안에는 다시 한국 땅을 밟자.'라는 나의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고, 비행기 안에서 2022년 첫 해돋이를 맞이했다.

토론토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2022년 첫 해를 비행기 안에서 맞이했다.


2022년 1월 1일 저녁 5시, 나는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나의 드라마틱한 환승 스케줄을 따라잡지 못한 내 짐은 밴쿠버 공항에 5일 동안 붙잡혀 있다 직항을 타고 한국에 도착해, 1월 5일 무사히 나에게 인도되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여행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나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주는 것뿐만 아니라,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지점이자 여행의 기대감을 부풀려주는 시간이자 각자 다양한 사정을 안고 같은 여객기로 함께 이동하는 다른 승객들과 한 장소 그리고 시간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가끔 난기류를 만나거나 기상 상황 등으로 인해 힘들었던 긴 비행시간이 끝나고 도착지에 무사히 착륙하면 승객들이 다 같이 박수를 치며 무사히 도착한 기쁨을 나누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함께 탑승한 승객들 그리고 객실 승무원들과 묘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나 땅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우리가 평소에 보는 모습과는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낀다.

참 길었던 이번 비행 동안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과 구름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비행은 3일 동안 4대의 비행기를 갈아타는 곤욕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에어 캐나다의 직원들은 그들이 준비하는 비행이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여행의 경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나는 3일 내내 에어 캐나다의 어느 한 직원에게조차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도 코시국,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 예상치 못한 강설량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며 일했겠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이 단순한 이동이 아닌 계속해서 추억하게 될 소중한 여행의 과정이자 경험이라는 것을 생각해주었다면 조금 더 현명한 대처와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돌아와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끝내고 이 글을 적는 약 2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이 비행 경험을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추억할 수 있지만, 이것이 내 최악의 비행 경험이었음에 확신한다. 나는 아직까지 캐나다의 캐 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고 에어 캐나다를 다시 이용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치고 막막하고 악몽 같았던 경험이라도 지나고 보면 웃음이 나게 하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배움을 주기도 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묘미'라 다시금 느꼈다.


내 최악의 비행 경험도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여행만이 가진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다음 여행이 기대되고, 또 어떤 최악의 경험을 갱신하게 될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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