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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May 03. 2019

카푸치노 슬픔-이해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커피 이야기


선희 씨, 이해할 수 없어요.


벚꽃이 하나둘 예쁘게 피어날 때쯤 어깨가 구부정한 중년의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포스 앞에 섰습니다. 그 남자는 메뉴판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지요. 전 좀 머쓱했지요. 약간 불편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래서 "주문해주시겠습니까"라며 평상시보다 더 또박또박 말을 했지요. 중년의 남자는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라며 말을 하는데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지요. 전 당황했어요. 남자는 마음을 다잡았는지 입술에 힘을 주어 힘껏 소리를 내어 말합니다. 손으로 얼굴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통통한 여자 아이 아세요?"
"네? 누구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죠.
그런데 중년의 남자와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전 그가 누군지 알아봤어요. 그의 얼굴에서 누군가 떠올랐으니까요.

"선희 아빠예요"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선희가 마시던 것처럼 해줘요."
  
전 조금 전 저를 당황하게 한 이 중년 남자가 누군지 알아봤다는 안도감에 반갑게 인사를 하려 했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요. 선희 씨 아버지는 앉을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가려다 멈춰 서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선희가 갔었......."

선희 씨 아버지의 목소리는 작을 뿐 아니라 매우 떨렸어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도 금방 알아듣지 못했지요.
전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죠.

"아~, 네~. , 어디를요"
"지난달 3월 6일에 갔어요"

전 직감했지요. 하지만 제 입술은  이미  묻고 있었죠.

"어디로 갔는데요?"
"3월 6일에 지 스스로 갔어요."

전 더 이상 선희 씨 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얼른 머신에 얼굴을 숨겼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하마터면 소리까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뻔했죠. 저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어요. 선희 씨 아버지 얼굴을 다시 볼 엄두가 안 났어요. 너무 놀라 손은 떨리고 있었고 카푸치노 한 잔을 만들어 내는데 한참이 걸렸어요. 다리에 힘이 빠져 서있기조차 힘들었지만 저는 카푸치노 한잔을 들고 구석자리에 앉아 계시는 선희 씨 아버지께로 걸어갔죠. 그사이 선희 씨 아버지는 조금은  진정됐는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선희가 여기를 참 좋아했어요. 지난번 저두 한번 같이 왔었는데 기억나나요?"


카푸치노에 시나몬 파우더 뿌리지 말아 주세요


전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커피머신 앞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선희 씨 아버지 쪽으로 눈길을 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등지고 서서 숨을 고르고 진정하려 애를 썼어요. 선희 씨와 선희 씨 아버지는 카푸치노를 좋아하셨죠. 선희 씨는 카푸치노에 시나몬 파우더 뿌리는 걸 싫어했지요. 반대로 선희 씨 아버지는 시나몬 파우더 듬뿍 뿌려달라고 했고요. 선희 씨는 하얀 구름 같은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이 좋다고 했지요. 스푼으로 치즈케이크 떠먹듯이 먹는 것도 좋고요. 반대로 선희 씨 아버지는 시나몬 파우더의 향이 좋다며 과하게 뿌려주기롤 요구했지요.   제게 선희 씨 아버지는 특별한 카푸치노 손님이지요. 하지만 오늘 선희 씨 아버지는 시나몬 파우더를 조금도 뿌리지 말라다라고 하네요. 선희 씨 아버지는 그 뒤로 한번 더 다녀가셨어요. 맏딸인 선희 씨가 너무 그리운 날에 딸의 발자취를 더듬고 싶으셨나 봐요.

선희 씨가 마지막으로 왔다간 날이 기억나요. 제 딸의 생일날이었죠. 우리 가족은 토요일만큼은 가족들끼리 식사하는 날로 정했기 때문에 카페 문을 조금 일찍 닫았지요. 그런 날 선희 씨가 왔었어요. 선희 씨가 올 때는 뭔가 마음이 복잡할 때라는 것을 알아요. 제게 와서는 길을 걷다가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무심코 툭 차 버리듯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툭툭 내뱉고 돌아갔지요. 전 선희 씨가 하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고통을 다 이해할 순 없었어요. 왕따를 당한 적도 공황장애도 앓아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1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약물치료 중이며 그래서인지 사회생활도 어렵기만 하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전 그냥 보통 사람이잖아요. 선희 씨 얘기를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선희 씨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했어요. 특히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고 마감 시간이 다돼서 선희 씨와 눈을 마주칠 겨를이 없었어요. 그때 선희 씨는 석연치 않은 얼굴 표정으로 인사를 하며 돌아갔어지요. 전 그게 막지막이 될지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선희 씨,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요? 제가 선희 씨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더라면 카푸치노의 시나몬 파우더처럼 선희 씨를 잠시나마 설레게 했을까요. 선희 씨가 없는 지금 후회가 밀려오네요. 그 고통의 무게를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선희 씨 고통을 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럼에도 선희 씨의 마지막 극단적 선택은 이해할 수 없어요.

선희 씨, 그래서 지금은 편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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