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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Aug 29. 2019

단지 커피를 원했을 뿐인데

사연이 있는 커피 이야기

여자는 시린 듯 두 손을 비비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는 지난밤 샤워를 한 후 말리지 않고 잠들어 버린 것처럼 부스스해서 나이 든 여자의 푸석한 얼굴을 도드라지게 했다. 게다기 화장기 없는 얼굴이 여자를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여자는 익숙한 듯 카페 사장과 눈인사를 나누고 여느 때와 달리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카페 입구에 자리한 드립 테이블에 앉아서 사장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을 마시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은 사장과 건조한 눈인사만을 나누고 무거운 몸을 풀썩 자리에 주저앉혔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썼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두 잔 내려주세요."



여자는 머리가 무거울 때는 드립 커피를 마셨다. 아메리카노보다 농도가 진한 드립 커피는 스트레스로 굳어진 여자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녹여주는 특효약이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여자의 시간이다.



드립 테이블에서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 소리가 음악소리를 덮었다. 원두 한 알 한 알이 그라인더 날에 닿아 부서지는 소리에 여자의 굳어진 근육들이 천천히 풀리는 듯했다. 짧게 끊어진 드르륵하는 소리를 계속 머릿속에서 리마인드 했다. 드르륵 소리는 계속하여 귓가에 맴돌았고 어느새 코끝으로 커피 향기가 머물렀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커피 향은 콧속으로 들어와 간에 여자의 뇌를 감쌌다.



쇼윈도 안으로  아침 햇살이 가득 찼다. 빛줄기 사이로 남자의 실루엣이 비쳤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다. 남자는 테라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빛을 뚫고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며 앞으로 직진했다. 안녕하세요 하는 사장의 인사가 들리지 않았는지 자기만의 인사를 보내고 사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남자가 여자 앞에 섰을 때 여자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커피 향으로 가득 찼던 실내에 남자의 담배 냄새가 범벅이 됐다. 냄새가 역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 표정을 못 보았는지 무심한 얼굴로 여자의 앞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없는 남자의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아침에 남자의 공장에서 키우는 개를 산책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여자는 카페에 들리자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빨리 집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여자 또한  모른 척 무시하고  카페에  들렀다.



집에는 15년째 모시고 있는 아버지가 기다렸다. 게다가 오늘따라 남자의 집에는 결혼 안 한 남동생이 아침 일찍 온다고 했다. 남자는 아버지를 모시게 된 이후 여자에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여자는 남자의 아버지를 남자를 대신해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복지관에 모셔다 드렸다. 바쁜 남자를 대신하는 일이라지만 정작 여자의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여자는 딸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사실을 의식할 때 여자의 뇌는 딱딱하게 굳었다. 어릴 적 사랑으로 키워주고 용돈 줘가며 키워주신 아버지보다 추억이라고는 부담감과 의무감이 거의 대부분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현실이 갑갑했다.


카페 사장은 과테말라 안티구아라며 드립 커피를 내놓았다. 여자는 눈을 감고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담았다. 커피의 첫맛은 우아한, 품격 있는 산미가 느껴졌다. 커피가 목을 스스로 넘어갈 때는 마치 물속에 몸이 일렁이듯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좋은 쓴 맛이 그녀의 무거운 머리를 꽉 잡아주었다. 그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무거웠던 머리의 고통을 잊게 해 줄 정도였다.



남자는 숭늉을 마시듯 커피를 호로록 마셔버렸다. 아마도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억났으리라. 반면 여자의 커피 잔에는 아직도 반 이상이나 남았다. 여자는 아주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며 마셨다. 언젠가 노을이 물들 무렵 들었던 과테말라 가수의 음률이 떠올랐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쓸쓸한 날 간절히 커피 한 잔을 원하는 그런 내용처럼 들렸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됐다. 과테말라 커피는 스트레스로 굳어졌던 여자의 입꼬리를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앞에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얼굴 표정을 보고 커피잔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결심한 듯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더 이상 화나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미안합니다. 이 커피, 테이크 아웃 컵에 담아주시겠어요?"



라고 여자는 말했다. 여자의 말에 남자는 안도했다. 조금 전의 난처한 얼굴 표정은 사라졌고 대신에 동작 빠르게 종이컵에 담긴 여자의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남자의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워 커피가  출렁거려 쏟아지지나 않을까 했다. 그리고 서둘러 문을 열고 나섰다. 남자의 뒤를 따르는 여자는 "단지 커피를 원했을 뿐인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https://youtu.be/QGWfbQlVG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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