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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Apr 04. 2020

봄밤, 소주 한 잔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나는 그제도 마셨고, 어제도 마셨다. 그리고 오늘도 마실 것 같다.



  운명적 관성으로 소설 앞에서 서다

  작년 늦봄부터였나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한 열병을 앓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기가 싫었고, 그래서 책 속에 침잠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소설 쓰기 아카데미에 수강신청을 했다. 물론 소설을 써보겠노라는 심산이었다. 그것이 뜬금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첫 시간에 확인했다.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운명적 관성으로 소설 쓰기라는 운명 앞에 설 수밖에 없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에 아무 이의 없이 아주 쉽게 그것을 인정했다. 그 인정 이후 아무 때나 흐르는 눈물병이 나았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술을 자주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1일 1회 1잔 이상 마시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를 부추긴 것은 물론 나의 사부가 첫 수업 때 뒤풀이 참석하는 빈도수와 소설 쓰기 실력이 비례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다양한 토론을 즐기며 작가로서의 소양을 높이는 방법이었는데, 소설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뒤풀이를 빼놓지 않고 참석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쓰기 실력이 꽤나 진척을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나는 술을 진심으로 즐긴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안녕 주정뱅이'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7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각 단편마다 술 마시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작품 속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소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권여선 작가는 실제로 상당한 애주가였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녀의 삶의 고뇌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술상을 차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는 나는 퇴근 무렵이면 집에서 소주 한잔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 적도 있다. 어떤 때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목젖까지 차있을 때면 더더욱 한 잔이 간절해진다.

나는 아직도 첫 번째로 소개된 '봄밤'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마침 봄이고, 그래서 권여선의 두 인물 알류 커플 영경과 수환을 보듬어지고 싶어진다. 상실과 배신의 고통을 겪었던 그들이 타자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또 한 잔 마셔야 한다.  시인 김수영의 시 봄밤이 이 작품을 탄생 시켰다고 하는데  작가의 탁원한 감각에 감탄한다.

소설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권여선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사실 요즘 나는 이언 매큐언에게도 쏠려있다. 그전에는 레이먼드 카버였고.) 그녀의 고뇌가 가슴 아프다.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녀의 필력에 끌려간다.


"밤하늘은 뚫고 들어올 그 무엇도 거부하는 눈동자처럼 까맣고 견고하게 얼어 있었다.
 <이모> 중에서
하늘은 맑고 가을볕은 바삭했다.
메모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의 버려진 헛간처럼 텅 비어 있었다.
<카메라> 중에서
달은 꽃묶음을 쥐듯 양손으로 찻잔을 맞잡아 가슴께에 붙이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역광> 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퇴근하면 어떤 안주로 한 잔 할까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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