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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Jul 20. 2024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조하는 공모자다.

누가 죄인인가?

김민선 대리는 야간근무에서 제외되었다. 내가 야간 당번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녀의 계획대로 되었다. 지난 며칠간 보이는 장소와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김민선 대리가 장 파트장에 수없이 작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변기린이 부러워하며 몇 번이나 밥을 사라고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가볍게 변기린을 무시했다. 변기린은 사실 야간근무를 즐기고 있다. 야간에 몰래 영화, 드라마를 감상하며 업무는 대충 몰아서 처리한다. 부족한 업무는 낮에 근무하는 후배 사원들에게 미뤄버린다. 매일 아침 퇴근하면서는 생산부 여사원들과 만취할 때까지 낮술을 마신다. 야간근무는 사실 그의 낙이다. 야간을 마치고 주간으로 복귀하면 얼굴이 많이 상해져서 출근한다. 다들 야간근무가 힘들어서 그런 줄 착각한다. 사실은 놀고먹느라 힘든 사람이다. 어쨌든 나도 다음 주부터 야간 당번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침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아침 구호로 시작하겠습니다.”


“월드! 베스트! 조립 팀!”

“월드! 베스트! 조립 팀!”

“월드! 베스트! 조립 팀!”


월드 베스트 조립 팀이라니, 우습다. 이런 아침 구호는 어디 이름 모를 중소기업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이곳 금성전자는 회사의 규모만 크지, 직원들이 하는 행동은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다.


“먼저 통합 일일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야간근무자가 지난 하루 벌어진 일들과 야간에 벌어진 일들을 요약해서 종이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해 준 보고서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장비 한 대가 품질 문제로 멈춰있었다. 그 바람에 생산부 현장에서 진행해야 할 제품이 몇 개 쌓여있는 상황이다. 우리 조립 팀은 특수 조립을 관리하는 팀이라서, 해당하는 특수 조립을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하지만 조립 공정의 앞뒤로 작은 사출, 작은 도색 공정이 필요해서 두 개의 공정 파트가 더 있다. 여기에 팀 내부적으로 품질 확인을 하기 위해서 품질 파트가 추가로 있다. 이렇게 총 4개의 파트가 있기에, 파트장 4명이 있고, 그 위에 팀장이 있다. 어떤 팀이든 팀장은 대단히 권위적이다. 회의 시간에 맨 앞에 앉아서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의자를 뒤로 힘껏 젖혀서 거의 누워있는 것처럼 앉아서 회의 내용을 듣는다. 조립 팀 팀장 신상수 팀장. 머리카락은 직모의 상고머리이고 얼굴은 둥글고 눈이 크며 키는 170 중반이지만 덩치가 있는 편이다. 오드아이처럼 한쪽 눈의 홍채 색이 빨갛게 충혈된 눈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권위적인 팀장이다. 팀장의 직책은 대부분 부장이다. 부장급이 많으며 상무님의 간택을 받은 사람이 팀장이 된다.


“저거 왜 저래, 확인해 봤어?” 팀장이 굵고 짧게 질문했다.


“저 장비 담당자 변규선 대리지?” 회의를 주관하는 작은 도색 쪽 김 파트장이 물었다. 팀장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장비가 멈춘 이력을 지적했다. 김 파트장은 그것을 재빨리 받아서 변규선을 찾았다. 하지만 변규선은 지금 야간근무 중이다.


“네 변규선 대리 담당인데 아침에 확인해 본 결과, 이물질이 다량 발생해서 장비 가동을 잠시 멈춰두고 원인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장 파트장이 변기린을 대신해 재빠르게 대답했다. 이때 누군가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생산부 직장이다. 생산부는 팀장 밑에 직장이 있고 4조 3교대의 조별 반장이 있다. 현장 직장이면 사무실 직급으로는 파트장급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여기 장비 하나 세워져 있는 거 뭡니까? 빨리 가동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생산부 직장이 들어오자마자, 닦달한다. 물론 생산직이고, 현장직이다. 우리는 생산부 직장 앞에서 모두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김 직장, 저거 장비 지금 억지로 쓰면 자재 다 버려야 해서 그래. 오늘 오전 안으로 살려서 쓸 수 있도록 할게.” 장 파트장이 대답했다.


“아니, 이럴 일이 없도록 장비를 미리미리 보수를 했어야죠. 지금 월말이 다 되어가는데 이런 식으로 장비 관리하시면 곤란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장비 살려서 자재 진행합시다.” 생산부 직장은 저렇게 대답하고 문도 안 닫고 나가버렸다. 생산부 직장의 자세를 보면 흡사 팀장보다 더 상위 직책으로 있는 상무님 저리 가라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생산부 직장이 저렇게 위압적이다. 외모는 어디 조직폭력배에 소속된 형님들 같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오른쪽에 번개 모양의 할퀸 자국이 있다.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구릿빛의 단단한 신체를 갖고 있다. 생산부 팀장은 더 심하다. 정말 조직의 큰 형님, 두목님 같은 외모를 갖고 있다. 뺨에 다섯 바늘 꿰맨 흉터 자국이 있다. 그런 사람만 생산부로 가는가 보다. 아니, 어쩌면 생산부는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야, 장석구, 오늘 오전 안에 저거 우선 해결해 줘라.” 팀장이 짧게 말했다. 언제나 장 파트장이라고 직책을 붙여서 말하는 팀장의 말투는 실명만 부르는 말투로 바뀌었다. 그의 오드아이 색의 차이가 더욱 선명해지며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그러면 장비 가동률 보겠습니다. 조립 파트 장비가 한 대 멈춰있는 것 빼고는 이상 없으며, 작은 사출장비, 작은 도색 장비는 조립 장비로 인해서 물량이 멈춰있는 틈을 타서, 소모품 교체, 세정 등의 정비를 미리 해두겠습니다.”


김 파트장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부드럽게 회의를 진행한다. 김 파트장은 참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문제가 될 상황을 만들지 않는 일이 그의 목표다. 그리고 이미 벌어지는 다른 문제를 이용해서 본인의 문제가 될 상황을 미리 대비한다. 문제 발생 확률을 거의 제로의 수준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네 그러면 아침 회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끝났다. 아침 회의는 매일 아침 아홉 시부터 약 삼십 분 동안 진행된다. 준비를 위해서 보통 삼십 분 전에 와서 미리 장비 상황과 진행 자재 파악을 해야 한다. 막내들은 늦어도 보통 그보다 더 이른 시간인 사오십 분 전까지는 출근한다.


“얘들아 바로 파트 회의하자.”


예상대로 장 파트장이 얼굴이 붉어져서 파트원들을 소집했다.


“야 변규 전화 걸어봐, 어디서 또 낮술 처먹고 있을 것 같은데.” 변기린은 긴 수신음 끝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새끼 이거 장비 미리 점검해서 이런 일 안 생기게 했어야지, 아침부터 쪽팔리게 말이야. 야, 김준혁 낮에 이 장비 이상한 거 없었어? 앞으로 야간근무자 들어가기 전에 장비 이상한 거 있으면 최대한 매듭짓고 들어가. 다들 서로 미루니까 이런 일이 터지는 거 아니야. 김 파트장 그 새끼 기세등등한 표정 봤어? 아오, 열받네. 모두 야간근무 할 때 당분간 아침에 내 얼굴 보고 퇴근해.”


장석구 파트장이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생산부에서 정해진 물량을 맞춰야 하는데, 장비 문제가 생겨서 계획이 틀어지곤 한다. 그 장비가 어느 지옥 팀의 어느 장비가 될지는 무작위다.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를시한폭탄과도 같은 장비를 관리하고 있다.


“이봐요 철수 씨, 혹시 내가 측정 예약한 자재 넘겨버렸나요?” 선호가 내게 와서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서서 말했다. 변규선의 불똥이 결국 내게 튀려고 한다.


“아침에 측정량 조절해야 해서요.”


“선배가 잡은 것도 넘겨버리고 많이 컸네요. 이제 야간 들어간다고 막 나간다는 거는 아니죠?”


선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술 냄새가 나는 것 보니 이 새끼도 어제 과음한 모양이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세수도 제대로 못 한 얼굴이다. 머리카락은 떡이 져서 일부러 머릿기름을 바른 것처럼 기름기가 흐른다. 아마도 장 파트장이 내린 불호령에 불쾌감을 가진 모양으로 그것을 내게 풀고 싶은 모습이다.


“야, 선호야, 그거 내가 넘겼다. 미안하다.” 김준혁 대리가 뒤에서 말했다. 선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김준혁 대리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돌아서서 가버렸다.


“야, 이화영. 너 여자애라고 내가 봐줄 거로 생각해? 일을 이따위로 하려고 대학 나와서 회사에 들어왔어? 너 제대로 안 할래? 이따위로 할 거면 당장 나가.”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여자 동기가 혼쭐이 나고 있다. 눈물 나게 안타까운 상황이다. 아침 회의가 끝난 후 모든 생산부의 막내들이 죄인이 되어 혼쭐이 나고 있다. 이곳 사무실은 칸막이 책상이 아니라, 모두 개방된 형태를 보인다. 사무실 한 곳에 30개 정도의 팀이 같이 있다. 제일 규모 있는 팀은 생산부 다섯 개의 지옥 팀, 그 외에 생산부의 수율 팀과 품질팀의 권력이 강하고, 개발팀, 분석팀, 제품팀 등 잘 모르는 팀들이 많다. 그중 우리 조립 지옥 팀은 가장 소란스럽기로 유명한 도색 지옥과 사출 지옥 팀 사이에 존재한다.


“야, 이 새끼야, 왜 이렇게 두껍게 되도록 내버려 두었어?”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얇아?”


“새끼야, 요즘 편하냐? 이물질이 왜 이렇게 많아?”


부산스럽고, 소란스럽다. 여기저기 전화 통화로 싸우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왜 이렇게 새끼들을 찾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사실은 그 새끼 중에 한 명이다.


“얼굴도 까무잡잡해서 키도 작고 못생겨서, 넌 일이라도 잘해야 해. 쪼끄만 게 몸매도 어디 초등학생 몸매를 갖고 대학교는 어떻게 졸업했냐?”


사출 지옥 상사가 유일한 여자 동기인 화영이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 보면 수위가 상당히 강하다고 느껴진다. 이 정도 수위는 사실 일반적이다.


“빨리 가서 사출 공정 얇게 되도록 조정해. 너 오늘 안에 만져야 할 장비가 20대는 된다. 빨리해야 해. 빨리 튀어가.”


사출 직무는 이름 그대로 평판을 사출시키면서 두께 조정을 해주거나 성질을 바꿔주는 공정이다. 관리 공정도 많고 장비도 우리보다 다섯 배는 많다. 바쁠 수밖에 없다. 화영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짧은 다리로 바쁘게 움직인다. 화영이는 그룹 연수를 받을 때 잘 웃고 말도 많은 귀여운 스물세 살 막내 여자애였다. 그런 그녀가 이젠 웃음기도 없어지고 말도 없어졌다.


“안경배 개자식아, 왜 이렇게 얇아. 더 발라야지. 회사를 좀먹는 자식아. 아껴서 뭐 하려고 했냐. 이 좀벌레 같은 자식아. 너 월급이 아깝다.”


안경배는 나름 화성전자 배터리 사업부에서 인턴도 했었던 엘리트 입사동기다. 당시에도 도색 공정을 경험했다고 들었다. 도색 공정은 배터리의 막질을 입혀내는 공정이다.


“네 선배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과의 말이 들린다.


“야, 고철수, 자식이 고민하면서 뭐 하는 척하고 있어? 오늘 빨리 들어가서 쉬고 내일 밤 첫 야간 수고 좀 해줘.”


장석구 파트장이다. 장 파트장은 그래도 인간적인 맛이 느껴지는 관리자다.


퇴근 후 기숙사에 도착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 부쩍 피곤하다. 대학 생활의 피로와는 그 맛이 다르다. 사회인의 피로다.


[콰직]


[쿵]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창 밖을 보니 구급차와 경찰차가 기숙사에 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든다. 밖을 나가보니 여자 기숙사 쪽에 사람이 한 명 죽었다고 한다.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았다. 이화영이다. 자살했다. 기숙사 건물 최상층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그녀의 자살 원인은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 분명하다. 다음 날 아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뉴스 단신으로조차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기업의 힘이다. 사실 사망사고는 흔한 일이다. 자살도 흔하다.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 역시 힘든 시절 자살을 꿈꿨고 지금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뒤에서 구시렁거리며 그녀의 약한 마음을 탓하고 있다. 사회가, 회사가 자살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 저주받은 장소에서 다 함께 그것을 동조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방조하는 공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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