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계영 씨
계영 씨, 여기는 말이야 이제 날씨가 풀려서 빨래 걱정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벌써부터 걱정 돼! 눅눅한 거 어떻게 하지!? 우리 계영 씨는 어떻게 했더라?!
아휴, 참 나는 이제 비슷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모른다 참,, 그래서 엄마는 대단한 거야 그렇지?
다름이 아니고, 이제 계영 씨에게 100편의 편지를 쓰겠다고 다짐한 만큼 안 쓰고 있자니 주기적으로 생각이 나더라고, 일반적인 그냥 약속도 아니고 이 세상에 없는 생각에만 존재하는 사람과 약속한 것인데 말이야. 참나.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또 뭘 써볼까 고민을 하다가, 역시 고민보단 그냥 슥슥 주절거리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네. 이것도 물려줬지?! 참나 계영 씨, 유전자 어디 안가네? 히
나는 말이야 어릴 때 계영 씨가 해주는 어묵 볶음이 그리도 맛있었다? 그 뻐~얼건 어묵 볶음을 먹을 때면 말이야 아무 생각도 없이 세 접시째 먹고 있더라니까? 내가 영양실조로 아주 말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다이어트 캠프에 가서 혹독한 식이요법과 트레이닝을 받았어야 했다고.. 비법이 뭐야? 내가 몇 가지 아쉬운 게 있어. 뭐 다른 건 지금 얘기하면 좀 슬프니까, 하나만 이야기하면. 그 요리들은 어떻게 그렇게 감칠맛 나게 잘 만든 거야? 레시피를 그때 좀 받아놨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랬으면 지금 내가 제2의 백종원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 확신하는데. 진짜 참 후회 된다. 왜 레시피를 정리 안 해났을까.
계영 씨, 그때 기억나? 내가 말이야. 정말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생겨서 ‘엄마, 이 사람이랑 나 꼭 결혼할 수 있게 해 줘’ 라며 거의 매일을 기도했잖아. 근데 나중에는 우리 둘 다 지쳐서 안 했더니 그 여자가 떠나가더라! 세상에 뭐 되는 게 하나 없냐 참. 푸하하
근데 그때도 나는 느꼈어, 계영 씨가 나름대로 도와주려 애쓰고 있구나! 왜냐하면, 그녀가 무진장 열이 받았음에도 당장이라도 날 차 버릴 수 있었는데, 계영 씨한테 받은 인류애로 그녀를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들었으니까. 참,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느끼지만, 엄마는 대단해..! 맞지?
계영 씨 오늘은 내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비치가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당신에게 받은 달란트로 쓴 ‘달려라 외톨이‘가 여러 도서관에 속속들이 진열이 되어 있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이렇게 편지를 남기네. 매번 편지를 쓸 때마다 보고 싶고, 앞에 있다면 펑펑 울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그냥 추억으로 미화할게. 참 당신 아들이란 게 자랑스러워.
계영 씨! 고마워! 내게 정말 쉽게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인간으로서 존엄의 한계를 느끼는 바닥의 순간과 아찔함, 그리고 너무나도 큰 행복, 내 키보다 큰 자존감을,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이건 부자건 가난하건 아무나 느끼게 해 줄 수 없는 거니까. 존경스러운 우리 계영 씨! 소원이 하나 있다면, 예전처럼 우리 막국수, 족발 시켜 놓고 더럽게 말 안 들었던 반려견 장군이랑 함께 족발 먹고 싶다. 입 한가득 쌈 싸서, 하품하는 것 마냥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모른 척, 아주 맛있게 당신 한 입 나 한입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