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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저녁노을 Aug 05. 2023

(1화) 노력하면 행복해지나?

행복도 노력이 필요한 시대


원하던 모든 걸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통해 그 누구보다


평범한 것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리하여 나는 운이 좋게도 현재 30대 여성 공무원으로 약 1억원의 빚을 지고 24평 전세에 남편과 고양이, 나 이렇게 셋이 함께 그럭저럭 지내는 중인 대한민국에서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성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맞벌이가 흔한 시대지만 내가 자란 90-00년대는 지역에 따라 맞벌이는 아직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고 게다가 우리 가족은 외국에서 생활하여 나는 외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탓에 웬만한 건 스스로 알아서 하는 독립성 강한 여성으로 자라났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3살의 나는 학교(어린이집)를 다녔는데 스스로 양말과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나갈 준비한 뒤 현관에 앉아있었다. 항상 신발은 거꾸로 신어 부모님이 웃으며 다시 신겨주셨지만 어찌됐든 이렇게 어릴 적부터 웬만한 건 스스로 했고 혼자 지내는 시간 또한 많았다. 부모님은 집에 잘 안계셨고 함께 밥을 먹기는 커녕 얼굴 보는 것 조차 귀했다.


우리 부모님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주지는 못하지만 늘 다정하고 애정이 많으셨고 그리고 집에는 항상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착한 남동생까지 우리 가족은 화목한 가정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왜일까. 나의 가슴에는 문득문득 큰 구멍이 한 번씩 찾아올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한국에 귀국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간일이 있다. 친구의 어머니가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차린 뒤 밖에서 놀던 우리를 부르고 마침 퇴근하신 친구의 아버지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날 나는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공허함이 따스함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의 일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평범함은 나에게 곧 안정과 행복을 의미했다.


그 삶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몇 밤을 고민한 결과, 우선 공식과 같은 몇 가지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공식이란 우선 초, 중,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뒤 인서울 대학을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남편을 만나 적당한 나이대 결혼하여 건강하고 이쁜 아이들을 낳으면 내가 원하던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에는 자본과 시간 그리고 주변의 지원 등 여러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한 만큼 결과가 돌아올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했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던, 아니 알지 못했던 나는 묵묵히 공부하여 인서울 대학을 진학했다.


드디어 됐다! 드디어 대학을 붙었다!
 

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하던 그 찰나 하지만 그 순간은 진짜 잠시 찰나였으며 졸업과 암울한 취업난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탄탄대로의 초석이 될 거라 생각했던 나의 대학생활은 스펙 쌓기, 학점 관리, 알바로 채워져 갔다. 경험이다 인턴이다 뭐다 나는 그런 것도 버거웠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 꾸역꾸역 맞춰갈 뿐이었다.


뒤처지지만 말자… 이 뒤처지지 말자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주변에는 해외대학으로 진학을 했니, 장학금을 받았니, 대기업이나 대사관 인턴을 한다느니, 승무원이 된다느니, 어디 면접을 봐서 조기졸업을 한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는 그 당시 흔히 말하는 루저가 되는거 같아 너무 괴로웠다.


나는 그냥 최대한 수업을 빠지지 않고 학업에 집중하며 카페 알바를 다녔는데 알바는 성인이 된 나의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부모님께서 경제적 지원은 모자라지 않게 해 주셨고 참으로 감사하다 생각했으며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지원에서도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다.


어찌 됐든 나는 또 버티고 버텨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였고 취업에도 성공하여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지원한 자리의 경쟁률은 무려 120:1이었다. 2015년 당시는 “공무원이 최고야”라고 외치던 시대였으며 나는 그 어려운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것도 졸업과 동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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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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