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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05. 2020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독립적인 사람에게 도움이라는 것

나는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유학원 없이 독일과 노르웨이에서 공부를 했고, 여행사 없이 여행을 다니고, 서비스 없이 세탁기 조립을 하며 세무사 없이 매년 독일에서 연말정산을 한다. 처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한 이유였지만 막상 해 보니 별 거 아닌 일임을 깨닫게 된 이후로는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작은 일들에서 연결되는 배움이나 스킬(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를 다시 상기하며) 및 "스스로 했다"에서 이어지는 높은 성취감과 자존감 증진은 내가 몸으로 겪어 보지 않으면 얻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조금 각박한 편이기도 하다.


그러다 이 독립적인 기질도 유하게 쓸 줄 알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1) 누군가가 호의적으로 도움을 제공할 때, 그리고

    (2) 팀 안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였다.


(1)의 경우 굳이 고집을 부려 혼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해당한다.

몇 달 전 남자친구와 여행을 할 때 나의 짐이 생각보다 조금 무거워 걷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일찍부터 자기 짐이 조금 가벼우니 내 곁짐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남자친구라 할지라도 그 도움이 부담스러워 한사코 거절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자 남자친구는 버럭 왜 자기의 호의를 받아주지 않냐며 화를 냈다.


그 때 알아차렸다.

남자친구가 짐을 들어주게 함으로써 나의 수고가 조금 덜어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내가 그의 기를 살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는 나를 도와준다는 것이 "본인이 남자친구의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짐 사건 이후부터는 비록 딱히 필요하지 않더라도 호의가 듬뿍 느껴지는 도움 제안은 굳이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은 의외로 도움을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긍정적인 심리임에 틀림이 없고 본인이 아는 지식이나 스킬을 공유함으로써 자존감까지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호의가 권리로 돌변하지 않는 선만 지킨다면 도움을 주고 받는 건 양쪽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일인 것이다.



(2)의 경우는 조금 더 유연해져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독립성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될 경우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헛된 생각에 이를 수 있다. 아주 위험한 생각인데 결과적으로는 혼자 다 짊어지고 가려다가 하나도 제대로 못 건지게 된다.

모든 분야를 설렁설렁하는 멀티태스킹 사람보다는 하나라도 책임감 있고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이 천 번 낫다. 로봇이 아닌 이상 맡은 일이 많을 경우 잘하는 일에 대한 집중도와 퀄리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산업혁명이 최적화된 분업을 통해 그 생산성을 극대화한 걸 보면 개인이 잘하는 한 두가지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모두가 10개의 업무를 야금야금 담당하는 것에 비해 프로젝트의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나은 것이다. "내가 어떤 업무를 중심적으로 맡고 있다"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일을 없게 만들면서 그 프로젝트에 대한 소속감을 높여준다.




떠 먹여주는 것 내지는 떠 받아 먹는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도움이라는 것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주는 이 받는 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점에서 보면 "나 혼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어"를 굳이 고집 부릴 필요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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