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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Jun 05. 2024

레트로 그 자체의 공간이 주는 행복

- 1일1드로잉100 (11)


레트로가 컨셉이 아닌, 레트로 그 자체,

생긴 지 거의 70년이 다 되어가는 카페, 학림다방을 딸과 함께 다녀왔다.


학림다방은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 오픈해 지금까지 영업 중인 박물관 급의 카페다.

서울대 문리대에 24 강의실까지 있었는데, 학림다방은 ‘제25 강의실’로 불릴 만큼 대학생들이 들락거리며 지성과 시대의 울분을 토하던 곳이라 한다.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답게 카페의 개수도 많고, 실력도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웨이팅이 두려워 지금껏 가보질 못했으니  안이 어떨지 사뭇 궁금했다.



들어가는 순간 복층구조의 오래된 나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 복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에 깔린 낡은 카펫,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룸카페 구조, 오래된 테이블 위의 오래된 낙서들...


카페의 낮은 천장아래 구석자리에 딸과 마주 보고 앉아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20대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20대인 딸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엄마로서가 아닌,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이 뭔지 이 나이에도 헷갈린다는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딸은 사람들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 이유가 결국엔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는 미학수업 때 읽은 책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이뤄야 행복해진다는 거창함보다는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것이 더 행복에 도움 된다는 조언을 해줬다. 지금 이 순간처럼.


낡아 부서질까 봐 걱정되는 좌석에 앉아 비엔나커피의 쫀득한 크림 같은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오래된 공간 속,

그 속을 젊은 세대가 꽉 채운 점도 신기한,

공간이 주는 힘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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