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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선홍
Sep 14.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공포의 명절 차례상>
블로그 사진참조
저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억도 흐릿해진 어린 시절에 잠깐 좋아한 적이 있었고, 결혼 전에는 그저 휴일이 많아서 좋았다가 결혼
후엔
그냥 싫기만 했어요.
양쪽 집안에 드려야 할 명절선물 부담에 무엇보다 제사, 차례상 차리기가 고역이었습니다
!
맏며느리에 대식구를 건사해 오는 삶을 살아오신 시어머니는 손이 크셨고, 저는 살림에 관심이라곤 없는, 차라리 회사 나가서 일하는 게 편한 며느리였습니다.
몸에 배이지 않은 노동이 1년에
몇 차례 들이닥칠 때마다 허리디스크는 점점 심해졌죠.
이제부터
제사준비의 꽃(?)
, 하이라이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요.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전 부치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
동그랑땡, 두부 전, 녹두전, 김치전, 고구마 전
등등... 아, 소쿠리에 가득한 오색 아름다운 전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식의 미학에 대한 애정... 따위는 고사하고,
가슴팍에
차오르는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불쾌지수 상승입니다. 요즘 온난화로 추석에도 더운 거 다들 아실 겁니다.
죄를 지으면 간다는 기름 지옥에 벌써 끌려 온 건가요? 흑.
제사 지내는 걸 거부하는 게 아니라 상에 올릴 한 접시만 하면 되지 산사람도 다 못 먹을 양을 왜 부치는 걸까요?
며느리들이 한탄을 해도
재료의
양조절이 쉽지 않다는 어머님의
답만
이 돌아왔어요.
이게 끝일까요? 에이, 이 정도면 섭섭하죠.
예전에는 송편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었거든요.
힘든 반죽
치대기
, 안에 넣을
소도 여러 가지
준비한 후
쟁반
여러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송편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설날엔 공포의 만두 만들기가 이어지고요. 온 가족이 매달려서 끝도 없이 만들곤 했습니다.
인생이
지루할 틈이 없겠죠? 하하.
그래도 아직
끝은 보이질 않습니다
!
삼색 나물 만들고,
조기들을
부치고, 고기산적을 구워야 하니까요.
믈론
저 혼자 하는 건 아니지만 여자 네 명 정도가
온몸이 녹진녹진해 나가떨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대망의
끝이 납니다.
시어머니는 이 많은 음식의 재료준비를 하시고도
모자란 지 혼자 식혜, 잡채나 LA갈비,
도라지무침까지
만드셨죠
!
진짜 헉소리 납니다.
결혼 후
특히
종갓집 맏며느리분들을 무조건 존경하게 됐습니다요.
물론 이것은 전야제(?)에 불과합니다.
다음날이
진정 축제에 해당하는 날이니까요.
제사상을 정성을 다해 차리려면 며느리 셋이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여야 해요. 제사가 끝난
후엔 오신
어른분들의 밥상 또한 정성스럽게 차려야 합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밥상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자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엔
'줄 서는
맛집
'의 설거지만큼이나
높이
쌓인 그릇들을 씻어야 하죠
.
많은 식구들의 아침,
점심,
저녁상
을 차리고 치우기를
여러 번
반복하
고 나서야
끝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남은
음식 처리하고, 싸가고 어쩌고의 정리 단계까지 마무리되어야 진정 축제의 끝이라고 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설날에는 특별히 아침에 차례상 차리기, 밤에는 제사상 차리기까지 있었어요!
하루에 축제가 두 번인 셈이니 제가 부러워죽겠죠?
집에 가면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어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다가 시어머니 원망에 얼굴도 모르는
조상분들 원망까지 솔직히 속으로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몇십 년 동안 축제준비를 해왔는데, 조상님들은 남들 다간다는 명절 연휴 여행 한번 못 가게 하시는 건지.
이런
축제
후에 야근이 일상인 회사로
출근해야 하니 누구라도 원망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어요.
속으로는 막내가 성인이 되는 날까지 버텨보자,
할 만큼 한
이후에
혼자
데모를 하든 며느리 파업선언을 하든 하자! 다짐했습니다, 그랬는데...
요지부동이시던 시어머니가 제사 한 번만 남겨두고 절에다 모시자는 겁니다!
에헤라디야~~ 노예해방의 날이라도 맞은 듯 마음 가득 인류애와 사랑이 차올랐습니다.
그동안 조상님께 불평한 것에 대한 불손함에 죄스러움을 느꼈고, 감사함까지 샘솟았습니다.
무엇보다 명절을 싫어하지 않게 됐지 뭡니까.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며느리란 이유로 연휴의 즐거움에서 배제되지 않는 명절이 되시길 빕니다.
서로를 시기질투하고 싸우지 않는,
사랑과 배려
가득한 명절이 되시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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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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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기획 PD 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퇴사 후 글짓고 밥짓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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