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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Nov 19. 2024

9화 안 되면 되게 하라(3)



            

“아니요...그게 그러니까...”     


장대표가 쏘아보며 물어본 말에 당황해 버벅거렸다. 애초부터 이걸 물어보고 싶었으면서 참고 있다가 일격을 날린 건가?          


“중국 합작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꽌시’라는 게 있어서 비즈니스가 쉽지 않다고 들었고...또...”     


그때 대표실의 문이 확 열리더니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오PD가 들어왔다. 저 여자는 정말 최악의 타이밍에 나타나 주시는 구나.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떠들어?”     


‘어느 어전이라고 함부로 떠드는 것이냐!’ 마치 사극 대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지금이 뭐 조선시대라도 되나? 장대표가 마치 임금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군.   


“배우한테 헛소리하는 걸로 모자라서 대표님한테도 떠들어대냐고!”

“대표님이 물어 보시니까...”      


억울한 마음에 대답하다가 깨달았다. 오PD는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이었다는 걸.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게 구는 사람에겐 절대 방어적으로 나가면 안 된다.     


“내기하실래요?”      


내가 똑바로 쏘아보며 묻자 이번엔 오PD가 당황할 차례였다.      


“뭔 소리야?”

“<자객>이 흥행하면 제가 회사 나갈게요. 대신 오PD님이 틀리면 <더 키친> 영화화 해주세요!”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장대표의 입이 놀라 쩍 벌어졌다.      


“이런 미친!”      


어이가 없는 건지 열받은 건지 흥분한 오PD의 말이 거칠어졌는데.


“자신 없으면 빠지시던지요.”     


많은 판돈이 걸린 도박판을 보는 도박꾼처럼 장대표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가 과거에 도박중독자였다는 말이 사실 아닐까?      


“막내 직원이 싸가지 없이 헛소리하는 걸 듣고만 계실 거예요?”     

오PD는 장대표에게 분을 토해냈다. 누가 싸가지 없는 지 모르겠네.      

“자자, 그만들 해! 내기 좋지, 한번 해봐!”

“대표님!!”      


화가 나 소리치는 오PD. 장대표가 내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자 얼른 뛰어나갔다. 공룡이 뿜어내는 불길에 온 몸이 타버리기 전에.

대표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회사 직원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얼음이 된 채 겨우 입을 열었는데.      


“왜에...”     


오PD의 심복인 임실장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더니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삭였다. 심실장이 놀란 얼굴로 다가오더니      


“와아... 패기 하나는 진짜...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엄지척’하는 심실장을 보며 대표실에서 큰소리로 말하면 방음이 전혀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 이 상황이 재밌어요?!

- <자객>이 흥행하면 회사 나간다잖아. 흥행 안 될 리가 없는데, 네가 원하는 상황 아냐?     


장대표와 주고받는 오PD의 말이 선명하게 들렸다. 내 말도 저렇게 잘 들렸겠구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던 홍감독이 나를 동시에 쳐다보는 직원들 분위기에 놀라 무슨 일이냐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 속삭이는 말을 듣더니 눈이 커다래진 홍감독이 내게 달려왔다.      


“대표님한테 대체 뭔 소릴 한 거예요?!”

“그러게요, 내가 미쳤나 봐요.”     


나는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았다.      


“미래씨는 진짜 내가 쓴 시나리오가 잘될 거라고 믿네요?!”     


홍감독이 저렇게 놀라고 감동받은 얼굴이 되는 건 처음 본다.      


“나 참, 몇 번을 말해...”

“결심했어요!”

“뭘...요?”      


생기 없던 홍감독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활기가 돌았다.      


“날 이 정도로 믿어준 사람이 없었는데... 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홍감독은 어차피 감독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상상 안 가는, 천상 감독 스타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해 봤자 어떤 답이 나오겠는가. 그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한방의 ‘훅’만 있으면 될 터인데, 그 한방이 바로 내 말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긍정적 효과인걸?      


“자자, 미래씨한테 걸 사람은 여기, 오PD한테 걸 사람은 저기...”     


심실장의 말에 놀라 뒤돌아보니 내기판이 신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심실장님,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재밌잖아요. 근데 어쩌지? 미래씨한테 건 사람이 아무도 없...”     


그때 홍감독이 주머니에서 만원 한 장을 꺼내더니 테이블에 탁하고 내려놓았다.      


“여기, 미래씨!”     


내 이름 밑에 달랑 한 장 놓인 만원을 쳐다보니 처음으로 이런 불안감이 들었다.      


‘만일 내가 기억하는 사실과 다르게 바뀐다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내가 한 선택과 행동은 과거와 달랐다. 홍감독이 <더 키친>으로 데뷔하는 건 맞지만 과거에는 내가 그 작품에 깊이 개입한 적이 없었고, 이후에 같이 한 작품을 하게 된 것뿐이었다. 선택과 행동이 다르니 결과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앞으로 어떤 변수들이 생길지 몰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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