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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Nov 15. 2024

6화 안 되면 되게 하라(2)


“저는요, 그럼 저는...?”

“<더 키친> 시나리오로 네가 입봉해. 어차피 네가 발로 쓴 시나리오잖아.”     


중년 감독이 자신을 위해서 이러는 건지, 버리려는 패인지 구분이 안 되는 홍민호의 표정이 혼란스럽다.      


“장대표님이 안 하겠다면서요? 저 같은 신인이 이 시나리오 들고 다른 데 가면 누가 하려고 해요?”

“야, 시나리오 좋아. 시기가 안 맞는 것뿐이지! 난 나이도 있는데 더 이상은 못 기다려.”     


갑자기 부모 잃은 고아처럼 황망한 기분이 드는 홍민호,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내쉰다.        


*     


오늘도 야근이다. 홍보 중인 안주연의 멜러 영화는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잘 만든 멜러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 영화를 홍보하는 일에 참여하는 건 영광이라 생각하고 버티는 중인데. 홍감독과 같이 영화 만드는 일이 앞으로 가능할까? 남의 영화만 홍보 하다가 늙어 죽는 건 아니겠지?      

혼자 늦은 저녁을 먹으러 회사 근처의 굴국밥 집에 들렀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챙겨 먹고 기운 차리고 싶었다. 식당의 빈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혼자 소주 마시는 홍감독을 발견했다.     


“엇, 감독님!”      


반가운 얼굴로 그의 맞은편에 앉아도 되냐는 제스츄어를 취하자 홍감독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소주 한 병이 비워진 상태라 불콰한 얼굴이었는데.      

나는 소주 한 병과 국밥을 주문했다. 홍감독은 나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더니     


“미래씨는 왜 자꾸 날 감독이라고 불러요?” 

“어차피 감독 되실 거잖아요.” 

“큭... 될 지 안 될지 어떻게 알아요. 조감독 따위는 파리목숨인데.”

“감독님은 꼭 성공하실 거예요.”      


확신하듯 말하는 내가 어이가 없는지 똑바로 쳐다보는 홍감독.       


“내 말 못 믿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버지도 내가 감독 못 될 거라고 했는데, 미래씨가 날 어떻게 안다고...”     


내가 미소 지으며 홍감독을 쳐다보자 의아한 표정인데.      


“재밌네요. 재능있는 사람도 자기 능력을 확신 못하는 구나...” 

“아버지는 내가 감독 되는 걸 반대하고, 이 바닥 사람들은 공대생이라고 무시하고... 모셨던 감독님까지 날 버리는데... 나 참, 확신요?”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 정말 좋다니까요. 자신을 믿고 버티셔야 해요.”

“그럼 미래씨는... 자신을 믿어요?”      


갑자기 허를 찔린 듯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확신? 그런 게 있었으면 애초에 홍감독과 헤어지고 결혼을 선택하지도 않았지. 운이 나쁘다고 말했었던 아버지 말에 세뇌되어 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확신이 없다. 

하지만 절대로 이전과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꼭 보란 듯이 성공할 거다. 

홍감독도 지금 얼마나 혼란스럽고 두려울지 이해가 되었다.  

홍감독은 침울한 얼굴로 소주를 마시더니     


“더 불효하기 전에 대기업에 입사 원서라도 넣을까... 고민 중이에요.”      


라고 말했다.      


“감독님! 진짜 실망이네요. 감독 데뷔하려고 십 년을 매달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요?”

“남의 인생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죠? 내 친구들은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가 있느니 마느니 하는데, 부모님 입장에선 하나뿐인 아들이 이러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이런 사람이 앞으로 감독 인터뷰 할 때마다 독설을 시원하게 내뱉는 사람이 되다니.       


“나도 엄마가 반대하는 일을 선택해서 절연하다시피 했어요. 우리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해드릴 수 있는 건... 성공하는 것뿐이지 않아요?”      


내 말을 들은 홍감독의 취한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가 갑자기 내게 소주잔을 내밀더니      


“성공 좋네, 성공-!!”     


하고 소리쳤다.      


“성공!!!”    


’짠!‘하고 같이 부딪히는 소주잔. 

홍감독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됐다. 주변에서 다 아니라고 말해 꿈을 포기하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감독과 의기투합하는 건 좋은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장대표님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홍감독이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수로?      


*     


나는 긴장한 얼굴로 대표실 앞으로 다가갔다. 손에는 장대표가 좋아하는 믹스 커피 두 봉지 털어 넣은 커피잔을 든 채. 심호흡을 여러 번 한 후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와!”'

     

덩치 큰 장대표의 굵은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긴장했다. 불같은 성격에 설마 주먹을 날리진 않겠지?    

들어오는 나를 발견한 장대표의 눈이 의외라는 듯 커졌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한 후 가져 온 커피잔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장대표가 무표정하게 쳐다보더니      


“무슨 일이야?”     


라고 다짜고짜 물었다. 당황해 말문이 막혔지만 각오하고 입을 열었는데.      


“대표님, <더 키친> 안 하실 거예요?”     


장대표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하든 안 하든 네가 왜...”

“회사가 잘 되야 저도 잘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전 우리 영화사가 한국 영화의 대들보로 성장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아까운 작품을 눈앞에서 놓치는 걸 어떻게 봅니까?”     


흥미가 생긴 듯 장대표가 날 똑바로 쳐다봤다. 다리를 꼬려다가 배가 나와서 잘 안 꼬아지자 불편한 지 헛기침을 했다.       


“아까운 이유를 말해봐.” 

“어... 일단 대사빨이 너무 좋잖아요. 캐릭터들이 아주 리얼하고 생생해서...”

“야, 대사빨로 영화 찍냐!”

“그러니까 탑급 배우를 캐스팅 안 해도 된다고요. 이 정도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이면 왕년에 잘 나갔던 여배우를 써도 되잖아요. 연기 잘하고 이름값 정도는 남아 있는? 캐스팅 비용이 확 내려갈 거니까 예산 부담도 없어지고요.”      


장대표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니 손가락을 딱딱 두드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장대표가 내 말에 관심을 보인다! 그가 호기심과 언짢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누구 생각이야?”

“네? 당연히 제 생각...” 

“정지우한테 <자객> 망할 거라고 말한 게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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