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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Jun 26. 2022

부모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

어떤 위로 내지는 변명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군가에 의해 태어났다. 이게 어떤 감각을 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신은 그렇다. 정확히 날짜를 알든 모르든 생일 이라는 것을 가진 존재.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부모라는 존재가 있는 존재. 당신은 정확하게  명의 남성과  명의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황새가 물어다 주지도, 알에서 깨어나지도, 박스 안에서 짜잔 하고 발생하지도 않았다. 불만스럽고 의아할지라도,  우주생명 탄생 공식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번도 태어나길 바라지 않았고, 한번도 천륜이란  따위에 얽힐 생각이 없었을지라도 당신은 끝내 타의에 의해 태어나  글을 읽고 있다.


 부모도 이번 생이 처음이라는 말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어떤 생각을 보챘을지 궁금하다. 부모를 더 사랑하기, 부모의 행동들을 이해하기, 부모에 대한 원망을 희석하기, 부모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기, 등등. 무슨 생각이 따라오던 간에 저 문장은 비겁하다. 저 문장 앞에서 '아 처음인데 어쩌라고. 그렇다고 내가 이걸 다 이해해야 하냐?' 라는 말을 매정하게 내뱉기엔 나는 그들의 자식이다.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른이었다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따랐던 어린 기억이 있는 자식. 그런 자식인 나에게 저 문장은 비겁하다.



 


 제법 설득이 되는 문장이라 더 비겁하다. 맞아, 처음이지. 처음이니까 실수 좀 할 수 있지, 못할 수도 있지, 처음인데도 이정도면 정말 잘한거지, 나는 이 정도도 못할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결국 나는 '이번생은 처음인 부모의 시행착오' 로 인해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혼자 끌어안는 자식의 모습을 하게 된다. 애초에 자식들은 부모를 뼛속깊이 미워만 할 수 있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존재의 시작점이고, 혼자선 살아남을 수 없는 약하고 무방비한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든 지켜준 부모라는 존재를 어떻게 미워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식들은 그 이후의 생채기들에 대해서는 늘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부모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니, 안그래도 복잡한 마음에 더 박차를 가하는 문장이다. 그런 자식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문장에 얽혀 혼자만 모든 것들을 끌어안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자식들도, 이번생에 자식은 처음이니까.


 며칠 전은 내 생일이었다. 남은 천조각들로 조악스럽게 만든 퀼트같은 나의 가족도, 이럴때 보는 거라며 간만에 모였다. 농담도 오가고, 더 먹으라는 훈훈한 말도 오가는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마스크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쓰면 오히려 코로나에 걸릴 것 처럼 더러운 마스크였다. 검은 때가 덕지 덕지 묻어있는 구깃한 마스크였다. 밥을 뜨던 속도를 늦추고, 아버지를 곁눈으로 관찰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순간 보인, 엉망진창인 치아들 사이 쑥 빠져있는 앞니를 마지막으로 쳐다보기를 관뒀다. 밥알은 때때로 정말 모래알같을 때가 있다. 아버지의 마스크 옆에 나란히 놓인 내 마스크는 새것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막 꺼낸 새 것. 내가 깨끗한 마스크를 쓰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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