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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Feb 24. 2023

낙관적 허무와 그 후의 일상

씨-어터 오페라 스페-셜



 ChatGPT. ML 이라는 키워드랑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을지라도 현대인으로서는 최근 들어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게 되는 단어다. 뭔가 묻거나, 어떤 이야기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 ChatGPT 는 주저없이 '매끄러운' 문장을 써내려간다. 아니, 출력한다. 이 기계의 타이핑에는 그 어떤 주저나 고민이나 생각의 쉼표가 없다. 이 등장에 기시감을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씨어터 오페라 스페-셜이, ChatGPT 의 유려한 문장 전에 있었다.


작년 지난 9월 1일, 아래 그림은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그림이 "미드저니" 라는 텍스트 입력을 통해 그림을 그려내는 인공지능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AI 로부터 지켜낼 수 있으리라 믿던 '창의' 의 영역까지 침범당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같진 않았다. 미국의 플래시 콘텐츠 사이트 뉴그라운즈는 이미지 합성을 통해 생성한 그림 업로드를 금지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사람이 만든 예술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AI 생성 예술로 넘쳐나지 않도록 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DSkXdycYjrQ



 인터넷의 온갖 정보를 수집해서 답을 내놓을 뿐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AI가 등장한 시대.

 수천만장의 이미지를 학습하고, 이를 '창의적' 으로 엮어내서 그림까지 창조할 수 있는 AI 가 등장한 시대.


  이 뉴스들을 접한 날, 심심풀이로 집어 든 물리책에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여러번 곱씹던 내가 느낀 감정은 허무였다. 내가 두세번 곱씹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물리의 진리를 컴퓨터는 1초는 커녕, 밀리초 내에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압도적인 지능을 가진 컴퓨터에 비해 나는 한없이 작고 보잘것 없는 지능을 가졌다는 어쩔 수 없는 사실. 그러면 나따위가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고, 고민하고, 고찰하고, 사유하고, 생각하여 기꺼이 지식을 엮어내는 모든 활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라는 허무에 닿은 것이다.


이런 허무는, 타임지의 겉표지를 ChatGPT 가 장식하기 전에도, 미술전에서 수상하는 AI 가 등장하기도 전에 인간이 느낀 바 있는 감정이다. 근대 절대왕정, 신분제도가 수차례 걸친 혁명을 지나오며 붕괴되며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소멸' 을 보면서 한번.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 끝에 광활한 우주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도 한번,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먼지 한톨보다도 보잘 것 없는 질량을 가진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면서도 한번. 역사를 거듭해 오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이 허무와 마주해왔다.


인간들이 매번 알아내고야만 이 공허들은 허무주의(Nihilism)라는 사상으로 정리되었다. “최고의 모든 가치가 그 가치를 상실한 것, 목적이 없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는 것” 니체는 허무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정확하게도 AI 의 방대한 계산량을 감히 감각하며, 인간이 취득하는 지식이라는 가치에 대해 느낀 감각에 대한 설명이었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고, 컴퓨터가 나보다 더 현명한 답을 내릴 수 있는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사유해야 하냔 말이다! 내가 애써 단단한 성을 쌓아올릴지라도, 결국 그 밑바닥엔 아무 의미 없는 허공 뿐일텐데, 내가 왜? 결국 인생의 최종 국면은 '결국은 모든게 다 아무 가치 없다' 는 거대한 허무인게 필연적인 듯 보이는데?



Rene Margritte - The Castle of the Pyrenees



내일 세계가 무너지든 말든, 사과나무를 심을 의지가 사라진 찰나였다. 허무주의를 설명한 니체는 보란듯이 오히려 '능동적 허무주의' 로서의 이 허무함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라는 것, 허무 자체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태도로서 말이다. 허무 뒤에 존재가 기다리기 때문에 완전한 허무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아무런 진리도, 절대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지금 순간 순간의 내가 느끼는 것들만은 실제하니까 이것들을 위해 살아가라고.



간추려 말하자면, 저 수없이 많은 별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을 리는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농담 같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만도 간신히 깨달았습니다.
(...)
그래요, 근데 그게 어때서요?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 뿐이라면
중요한 것도 우리의 삶 뿐입니다.
우주에 아무런 원칙이 없다면, 유일하게 의미있는 원칙은 우리가 정하는 원칙 뿐입니다.
우리가 우주의 목적을 정합니다.

낙관적 허무주의 - Kurzgesagt – In a Nutshell



더 뉴요커에서 SF 작가 테드창은 ChatGPT 를 '웹상의 흐릿한 JPEG' 라고 표현했다. 정보를 압축해 저장한 ChatGPT 는 원본이 아닌, 블러처리된 JPEG 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복사의 복사를 거듭하며 붙여넣기한 이미지의 화질이 나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So just how much use is a blurry jpeg, when you still have the original?"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인터넷의 접근 권한을 잃지 않았고, 많은 자료의 오리지널이 존재하는데 어째서 흐릿한 JPEG 를 사용해야 하겠냐며 반문한다.

 그 어떤 붕괴와 변화에도 인간이 끊임없이 우리의 목적과 경험을 찾아 살아간다면, 우리의 우주는 늘 또렷한 실제로 가득차지 않을까. 그러니 부디, AI 의 압도가 자아낸 허무에서 벗어나자.







+1) 니체는 수동적 허무주의, 즉 허무주의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인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염세적인 태도를 경멸하고 비판했다. 어쩌면, 내가 이런 AI 의 등장으로 더이상 지식이나 창의를 탐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를 경멸했을 것이다.


+2) 광활한 우주를 필연적을 탐구하는 천문학자들의 자살률이나 우울증 걸리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낭설이다. 실제로 직업별 자살률이나 우울증 비율을 따지면 사무직이나 서비스 노동직이 월등히 높다. 나는, 허무주의에서 오는 우울보다는 인간에게 상처받음으로서 생긴 우울이 더 짙고 끈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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