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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예술가의 일지 Mar 10. 2023

해가 지면 사라지는 전시

입정동 리서치 기록 : 2021.8.2-2021.8.12

                          

해가 지면 사라지는 전시 : 오늘만 전시 중 !    



2021.8.2 : 입정동 시 쓰기
2021.8.3 : 움직임 만들기
2021.8.4-6. : 재개발 관련 이슈 공부 & 인터뷰
2021.8.9-12. : 작품 만들기
2021.8.12 : 공연날


2021년 8월 2일 : 입정동 시 쓰기


 - 입정동 기록 일지 

2021.8.2

입정동 일대를 돌았다. 오랜만에 있는 고요한 시간들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니 생각들이 그 위에 천천히 들어왔다. 낡은 건물 위에 왜 새 건물들을 짓고 싶어할까? 느릿느릿,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사람들, 회색손, 검은 빛 얼굴, 주름살 같은 근육. 나는 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게 될지, 이 짧은 시간 속에서 만들 수 있는 진심이란 무엇일지, 그냥 멍한 느낌이었다. 습한 먹구름에 둘러 쌓여있는 느낌.   물품들이 가득한 입정동. 우리는 누군가의 부품이 되고 또 부품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새로운 관객들을 찾으러 나왔는데 진짜 새로운 관객들을 마주한 느낌인 하루였다.막막하고 두렵고 무섭고 설렌다.  

- '입정동' 주제로 시 쓰기


2021년 8월 3일 :  시를 바탕으로 움직임 만들기


- 시를 바탕으로 움직임 만들기

실내 공간에서 진행 후 영감을 줬던 장소에 가서 그 움직임을 다시 적용시켜 진행했다.
정지하고 싶은 나 ‘걸어’라는 주문을 받고
어느 미로 속에 던져졌다 나갈 수 있는 문도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없었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닫힌 문들 사이에서
가만히 정지 계속 정지, 정지, 정지 그러자
정지된 사람움직인다 회색손 검은빛 얼굴 주름살 같은 근육
나는 또 정지했다 걸었으나 걸었다고 할 수 없는 정지였다.


- 입정동 기록 일지

2021.8.3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요? 당신에게 중요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그 기억들 가운데 무엇을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은가요?

기록해서 보존하는 것, 조금 더 오래 기록하고 싶은 것, 결국 선별해서 기록하게 되는것.
이 선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제외된 것 중에 훗날 가치가 소환되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

기록으로 미래세대에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에게도, 또 다음세대에도 기록들을 어떻게 나눠가질 수 있도록 계속 질문하는 것.


2021.8.4-6. : 재개발 관련 이슈 공부 & 인터뷰


- 재개발 관련 이슈 스터디 및 리서치

* 한국의 재개발
- 낙후되면 개발하고 낙후되고 개발. 무한반복.
- 로마의 오래된 도시처럼 만들지 않고 왜 탈바꿈하려고 하냐? 왜 세우려고 하냐? 낙후된 지역을 최첨단 도시로 만든다는 시선과 계획이다.
- 너네가 가라 그럼 (어떤 것들을) 해줄게. 주고 받는 식으로 이뤄지는.
-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너무 힘들고 어려운 문제.
- 청계천의 복원계획의 모순점 : 차량 증가/ 도심 경쟁력이 하락이 돼서 벽개 공사를 '결국' 해야한다.

* 세운상가들의 역사
- 서울시의 정책적인 면으로 최초의 주상복합. 연예인들이 들어와서 사는 곳. 현재 타워팰리스같은.
- 복합상가들. 탈바꿈하겠다는.
- 이제는 낡았으니까 갈아버리려는.
- 여러 골목. 뒤에서는 사라지는 아트가 세워지는 일들이 생겼다.

 * OB베어의 문제
- 을지로 노가리골목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 서울시에서 서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어도 정책적으로 보호의 차원이 없었다.  

* 입정동 지역의 역사
1. (세종 때) 표석을 세워서 어느 정도 범람하는지 보는 것이 수표이다. 사전에 홍수가 범람된다고 예측된 부위의 수위를 표석 위에 표시한다. 범람을 하는 것을 기준으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을 형성이 되었다.
2. (일제강점기, 조선말기) 남촌에 일본인이 거주를 하고 있서 근대 건축물이 많았다. 남촌은 일본을 지향하는 따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지역이었다.
3. 1920년대 계속 하천에 범람되고 복개 계획 제적 문제로 낙후되기도 했었다.
4. 1930년대  다방, 일본, 조선인까지 있는 다양한 문화적 공간이 되었다.
5. 8.15 광복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판자촌이 형성되고,  물이 여러 가지로 토사와 쓰레기로 가득했는데 청계천 오염이 되었다. 그 이후 청계천을아스팔트로 묻어버리게 된 것이다.
6. 그 이후 현대식 건물들이 그 위에 세웠졌다. 근대문명. 세운상가. 공구. 인세. 중심지.
7.1970년대 거리에서 시위도 많이 일어난 곳. 전태일 열사.
8. 1990년대. 청계고가도로.
9. 그 이후. 청계천복원 사업 및 정비사업(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 노후 불량한 건축물, 주거환경 개선 및  공업지역/ 상권활성화)
10. 2006년 정비촉진지구로 설정되가지고 아파트 주상복합 건설 계획
11. 2018년부터 입정동 일대는 2018년부터 철거가 되기 시작.
12. 현재 보호가능한 철거법도 조례로 제정되어있을 뿐이라 다른 지역도 2021년부터 12월 1월 예비철거 진행예정.

* 공공재개발 무엇인가?
- 도시재생 사업의 이름으로 쇠퇴지역 지정 후 재개발이 가능하다.
-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인데 도시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개발을 하는 게 정당한가? 정말 좋은 생각인가? 도시의 성장 & 낙후와 쇠퇴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
- 재개발은 사실 자본을 순환시키기 위한 이유가 더 크다.   

* 입정동 재개발의 문제가 어려운 점 :  역사유적의 훼손문제, 무질서하게 늘어져있는 노점상가, 33년정도의 근속연수를 가진 입정동 사람들 등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어렵다.입정동 재개발의 문제는 가치의 문제이다. 새롭게 밀고 새롭운 주거형태와 지속가능한 주택문제의 해결 장소를 이곳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입정동을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과 공업지역으로 바라봐줄 것이냐의 문제.


- 입정동 사장님들 인터뷰

옆집 사람들. 시골 같은, 마을 같은 곳.
 소규모로 무언가를 창작해낼 수 있는  곳.
억울하게 무너지고 있다. 천천히.
뿔뿔히 흩어지는 것.




- 입정동 기록 일지

2021.8.4

 재개발 관련된 단어를 찾아 검색했을 때 내가 조사하려는 재개발의 이면의 문제보다는 사실상 재개발 된 곳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검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출이 그쪽으로 더 많이 되는 것일 뿐일수도 있다.)  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 역시 공간이 없어 공간을 꿈꾸는 건 피차 마찬가지다. 내 집 마련이라는 서민들의 꿈 역시 요즘 정말 사회문제이기도 하다.하지만 그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재개발 을 통해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어디도 오갈 곳 없이 서로를 바라 볼 수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입장들이 있는 재개발에 관한 이슈를 들으며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이렇게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이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내 꿈에 가까운 일들이었는데 생각보다 역시나 어려움들이 많다. 좀 더 진정성 있는 작업들이 되길 바란다.

2021.8.5

 쪽방촌 소유주는 타워팰리스에 산다. 쪽방촌의 집주인들은 다 현금으로 받기 때문에 더 큰 이익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돈을 번다. 쪽방촌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술 먹는 게 제일 쉽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달 일을 해도 기초수급자로 받는 돈을 넘을 수 없다. 일을 추가로 하면 기초수급에서 떨어진다.  우리의 세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희망이 있을까?

2021.8.6.

 임의로 재개발이라는 주제가 정해졌고, 임의로 정해진 주제 자체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적인 질문을 물어봐도 될지 마음이 왠지 무거웠다. 우선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하는 데 있어 그만큼의 진정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지 않아 그점이 더 어려웠다. 인터뷰지를 작성하는데 있어 질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바로 인터뷰 질문을 찾으려니 턱 막혔다. 그 표정들을 너무 티 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다른 누군가와 만나서 작업을 할 때 주어진 시간이 짧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방법론에 따라서 결과도출 하듯 인터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지 이 공간에서. 하지만 또다시 더 마주 볼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았어야하는데 반성이 스스로 된다. 막상해보고 나서는 너무 잘 이야기해주셔서 조금 더 가볍게 나서야했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코웃다 팀이 없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계속해서 많은 생각들이 드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있을 때는 앞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우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거리에 나와 움직이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처럼 처음 마주하는 것들도 그렇게 해보는 태도를 갖자.
 두 명의 사장님을 만났는데 한명 사장님은 이 일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으나 또다른 사장님에게는 이 일은 수긍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전날 뵌 공간 기획자님은 그냥 역사를 조망하듯이 저 멀리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듯했다. 정말 쇠퇴하는 시간 속에 있는 산업이라서 사라지는 것인 걸까? 아니면 반강제로 무언가에 눈이 먼 누군가가 소중한 가치를 헤치려고 하는 것인가?     
 걱정이 많이 되지만 우선 즐기기로 했다. 내가 이 짧은 시간 속에서 얼만큼의 진정성 있는 작업을 가져 올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 와서 가진 기억과 질문은 무엇일지? 관객이 입정동 사장님이라면 나는 그들을 위해 무슨 공연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보일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말고, 이번에는 관객들과 이 공간을 생각하면서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


2021.8.9-12. :  작품 만들기


- 입정동 기록 일지

2021.8.9.

스쳐지나가는 곳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늘 보이던 것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는 가?
짧은 시간동안 사라지는 곳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겨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이 과정 자체를 이 순간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자.
무엇을 좋아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관객을 생각하며 작업하는 일.
내일은 하지 않던 것을 시도해봐야 하는데 굉장히 걱정이 앞선다.
내가 잘 못하는 것들 투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  입정동 관찰록

사라지지 않은 글자, 청계 HOTEL. 이 글씨가 희미해지기 전엔 무슨 색깔이었을까? 파란색 빨간색? 지금은 테두리들만 겨우 남아있어. 나는 가만히 테두리뿐인 청계 HOTEL 글자를 올려다보다 움직이는 기척에 고개를 아래로 내려다봤어. 청계 호텔 아니 모텔 아니 무너진, 아니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호텔에서 아니 둘러싸인 울타리 밖에서 아니 둘러싸인 울타리 사이에 난 구멍 속에서 오늘 한 사람을 보았지. 가만히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어떻게 어디로 들어갔지? 나는 청계호텔을 빙빙 한 바퀴 돌아봤어. 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곤 모두 막혀있었어. 저 아저씨는 언제 어떻게 들어간 것일까? 저 아저씨는 누구일까? 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걸음을 옮겼어. 구경을 하면 안될 것 같았어. 이 청계 HOTEL을.


대중 사우나라고 적힌 간판은 아예 회색빛으로 다시 스프레이를 뿌린 느낌이다 대중 사우나가 지금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어 말하듯 무너져가고 있는 사우나를 바라보며  오고갔을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 글씨 위에 먼지와 검은 떼들이 마치 또 새로운 색깔인 마냥 덮여있다 인쇄물로 뽑은 스티커 간판들이 창문에 붙여있는 곳도 있다    

대성정밀. 가게로 드디어 들어간다. 더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시원하다. 긴 긴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얼어붙어 최대한 눈을 마주치며 그냥 계속 웃으며 계속 웃으며. 사장님이 못보고 계속 옆에서 찰리만 본다. 고개는 끄덕이는데 긴장한 나머지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는다. 찰리님이 한 질문을 내가 또다시 한번 한듯하다. 당황스럽다.  다른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왜 자꾸 담배를 피우고 한쪽 눈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계신 아저씨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지 모르겠다.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문 옆에서 문 옆에서 쳐다보지는 못하고 너머로 들리는 소리들을 듣는다.

다방 아줌니가 왔어. 계속 요 앞에서 글을 쓰고 있어. 왜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를 못할까? 그래도 설레는 것 있지. 옆에서 다방 아줌니와 파란 쫄티 아저씨와 커피가 맛없다는 아저씨 옆에서 계속 글을 쓰고 있어. 얼음을 넣어서 싱겁대. 아저씨는 계속해서 커피를 어떻게 만들면 맛있는지 이야기하고 다방 아줌니는 계속해서 듣는척해. 나는 아주 가까이서 가까이서 계속 듣고 있어. 아저씨가 바로 옆에서 쳐다보시는데 계속해서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 고개를 한번 못돌리겠네.  

공간을 둘러보다 빈 밥그릇을 받고, 그러다 다른 길 골목에서는 길고양이를 만났다. 배고프다고, 배고프다고. 길고양이가 되어볼까? 길고양이가 되어 이 거리를 누비는 안내자가 되어볼까도 생각이 든다. 그게 자꾸 맴돌아서 생각해보니 길고양이는 언제나 터전을 잃고 떠돌지 않는가. 길고양이는 또 이 자리가 사라지면 어디로 갈까. 공간이 없던 만큼 계속 있을까. 지금 당장에 길고양이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몸의 상태가 아닌데 그게 걱정이 되지만. 어떤 컨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양이를 자주 마주한다. 잊지말자. 내일은 추르를 들고 가자. 추르를 사자. 우리 집에 잘못 배달 온 고양이 간식 택배는 이날을 위해서였나?   

다른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왜 자꾸 담배를 피우고 한쪽 눈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계신 아저씨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지 모르겠다.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눈앞에서, 문 옆에서 문 옆에서 쳐다보지는 못하고 너머로 들리는 소리들을 듣는다.

스스슥, 줄무늬 파란색 쫄티를 입은 아저씨가 담배 하나를 물고 슬리퍼를 신고 골목을 왔다갔다 걸어 다닌다 저 멀리서는 달그락, 지이잉, 내 앞에서는 다방 아주머니가 쟁반 위에 잔을 들어 달그락 또 저 앞에는 패애앵 깨애액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들으면 들을 수록 어디선가 하나 둘씩 쌓여간다 알 수 없는 물건 큰 철통 위에 작은 철통 그 위에 철통 책상 같은 곳곳에 큰 사각형의 돌덩이들 열린 창문 뒤로는 텅 빈 공간과 함께 스며나오는 곰팡이냄새들 인쇄되어 나온 글씨가 아니라 수기로 쓴 듯한 반듯한 모양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글씨가 적힌 간판들.

노란천막 너머의 아저씨가 나와 쇠청살 아래의 살아있는 가게 아래에 연결되어있는 전기끈을 뺀다 노란색 천막 너머의 아저씨 안쪽의 아저씨 모두 비슷한 소리들을 내며 일을 계속한다 계속 일을 한다 일을 해 하루를 산다. 하루를 살아야겠지 모두 하루를 살아가는데 하루하루 살아가 지어진 저 높은 건물 위에는 누가 살까? 누가 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까 우리는 모두 아래에 서 있다 이 높게 쌓이고 쌓인 철창을 잡고 올라간다면 그 위에는 무엇이있을까?  

쇠철창들로 뒤덮인 건물들이 노란색 포장지들로 둘러쌓여있다 너희들은 다 죽었고 새롭게 오를 거야 짠 하고 포장지들을 벗겨 보여줄게 흥 난 여길 날아오를 거야 그 사이를 참새 한마리가 총총 난 어디든 상관없어 노란색 천막 아래로 고양이 한마리가 슬금     

드르륵  노란 천막 사이에서 소리가 난다 바로 건너편에서도 드르륵  바로 노란색 천막들 뒤로 다 죽었다는 건물에서 비슷한 듯 다른 소리들이 난다 죽어있는 건물들 사이에 살아있는 건물들이 빛들이 소리가 있다 어디가 닫힌 곳이고 어디가 열린 곳인지 모르겠다     


- 입정동 속 사물들 명명하기


- 입정동 기록 일지

2021.8.10.

이제 새로운 것들이 눈에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감각들은 어느 순간 몸에 익고 예술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 듯 하다. 느껴지는 것과 보이는 것이 뭔가 달라졌구나 깨닫게 되는 하루였다. 기술 뿐만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가, 그 시선이 얼마나 디테일하고 기술적이고 예술적이냐에 따라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얻고 배운 만큼, 정든 이 시간만큼, 제대로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진지한 척하고 열심히하는 척하는 것일까? 말만 앞세우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만큼 해야지. 하자. 잊지 말아야할 것. 할 수 있는 최선이 현재 얼만큼인지 현실적으로 알아야하는 것. 잘하고 싶은 욕심은 언제나 있는데 욕심보다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들을 떠올리자.          

오늘은 닫힌 가게들의 철문들이 보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게들이 살아 있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곳에서 공연하는 것은 어떨지 상상해봤다. 닫힌 철문에서의 시간들을 찾아보며 글을 써보는 것도 좋지만 공연을 상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21.8.11.     

기억하고 싶었다. 사라져가고 있는 공간을 기록해서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일 주어진 공간에 와 글로 기록을 하고, 인터뷰를 했던 사장님을 위한 소설을 써 전시 해보기로 했다. 4일동안 너무 큰 일은 버린 건 아닌지,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수 있을지, 소설이 써지지 않을까 걱정이되어 2시간마다 잠에서 깨거나 수면을 통채로 날리기도 했다.         

과장되지 않게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중요하다.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그것을 계속 되새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남아서도 몇 인터뷰를 더 했다. 잠을 못자서 정말 어지러웠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너무 힘들어 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설이 써지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 처음엔 떠오르는 질문들을 뒤로 한 채 과제를 위해 수행하기 급급했지만 계속해서 머물며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여기서 관객들과 나누는 창작이 과제로만 끝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4일의 시간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관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고민했다.  이제 공간에 와 사장님들께 인사를 나누고 옆에 앉아있는 것이 익숙하다. 그것이 참 신기하다.    


2021.8.12. : <해가 뜨면 사라지는 전시> 전시형 공연


- 입정동 기록일지

살면서 몇 안 되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면서도 될까 말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글 좀 그만 쓰고 싶다 여러 잡념, 지침들이 찾아왔고 나의 한계가 보이는 듯 했다. 공연 당일 날이 되어 엉망진창으로 되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행히 설치 할 때 친구와 PD님이 도와주셔서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소설을 하루만에 완성시키느냐 마느냐가 강건이었는데 어떻게 그 소설이 완성이 되었다. 정말 공연 한편을 끝낸 것과 같은 기분이 전시를 치우고 들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언제나 쉽게 말할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했음이 후회되지 않는 시간이라 너무 운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화려한 옷들을 다 벗어던지고 사람들과 함께 탈춤을 추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막연히 어렸을 때부터 그런 모습들을 상상했다. 이야기 버스킹, 이야기를 관중들 앞에서 만들어내 이야기꾼과 같은 것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언제나 나누고 싶고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듯 하다.  

‘거리’라는 것은 나에게 예술로 그저 사람들을 만나고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며 ‘거리’라는 곳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인지 조금씩 와닿기 시작한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나눈다는 일이 언제나 바랐던 일이었지만 시도했을 때는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동안 원했던 일이 되었다고 그게 즐겁기보다는 훨씬 힘든 일이 많았던 것을 알기에 그것은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지금은 그것을 시도하고 해볼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의 사적인 얘기를 묻고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것을 함께 해주고 나눠서 나에게 이런 깨달음과 생각을 준 것 같아  앞으로 더 예술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주고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더 많은 것들을 받은 느낌이다.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 않다. 관객을 위한  이야기, 공연을 보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한 공연을 언제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해볼 수 있었다. 늘 언제나 하고 싶은, 꿈꾸는 일이 생각보다 주어지면 너무 어렵고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해 볼 수 있는 힘을 이 시간을 통해 얻었다. 이 힘들을 또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겠다.   


이 작품은 거리예술 넥스트 2차랩의 작품 발표로 입정동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입정동은 오랜 시간 청계천 공구거리로 불리며 여러 장인들이 기초산업을 만들어갔던 곳입니다.  이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며 평생 이곳에서 일을 했던 여러 장인들이 공간과 직업을 동시에 잃으며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 해가 지면 사라지는 전시>는 입정동에 머물며 잃어버리는 것을 예술가는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업한 전시형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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