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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예술가의 일지 Feb 16. 2023

길 잃은 손

사장님의 이야기(인터뷰)로 작업한 단편

  


  달그락, 위잉, 지잉, 찰각. 기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니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잠시 밖으로 나와 옆에 굳게 닫힌 철문들을, 또 저너머의 무너진 청계호텔을 바라본다.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안으로, 양산을 들고 안으로, 정장바지를 쫙 차려입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던 사람들. 그 옆엔 공중사우나가 있었는데 한참 땀을 흘리고 공중사우나에 가 왁자지껄하게 이야기 나누고 씻던 시간도 좋았지. 옆 가게 사람들과 일하다 말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도 좋았어. 오며 가며 인사하느라 바빴는데 말이야.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뭐 별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얇은 쇠를 다시 기계에 넣고 빼내기를 반복한다. 이제는 보지 않고 넣었다 빼도 언제 넣었다 빼야 하는지, 기계의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곳 청계천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그는 ‘버텨야지, 다시 버텨봐야지’ 중얼거린다. 

 그에게는 버텨온 시간이 있다. 중학생 시절 청계천에 맨몸으로 올라오기까지 버텼던 시간, 추운 겨울 공장에서 동상에 걸린 채 서있기 위해 두 발로 버텼던 시간, 작업을 하다 장갑과 함께 손이 안으로 말려들어가 기계가 멈추기까지의 시간, 그래서 인대가 끊어져 다시 붙기까지 버텼던 시간이 있다. 또 그렇게 무수히 많은 버티고 버틴 시간들이 그에겐 있다. 

 세입자들을 내쫓고 재개발이 한창인 입정동에서 버티고 버텨 건축사에서 자신과 같은 세입자들을 위해 건물을 지어주기로 했다. 시민단체와 항의를 하고 싸운 끝에 받아낸 공간이었다. 또 한 번 그렇게 버텼다. 다 같이 갔으면 좋았으려 만 버티지 못하고 나간 가게들도 많았다. 자신의 구역도 좀만 빠르게 재개발이 되었더라면 40년 넘게 지낸 이곳에서 떠날지도 몰랐을 거라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생각한다. 

 이미 어딘가 구멍이 곳곳에 난 것 같은 입정동이 돼버렸다. 자신들만이 만들어놓은 지도는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새로운 건물로 옮기면 자신들만의 지도가 아닌 정렬로 늘어진 칸칸에서 새롭게 재배치된 공간에서 버티고 버틴 사람들끼리 또 버텨야 하지만, 아마 또 버틸 것이라고 아니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나이 65세 버티고 버텨서 70세까지 아니 저 앞 할아버지처럼 80세 너머까지 버티고 버텨 자신의 가게에서 계속해서 얇은 쇠를 다시 기계에 넣고 빼내고 싶다. 왜 그렇게 버티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가 지금까지 기술을 익히기까지의 40년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다. 매일 해오던,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일은 이유가 아니라 몸과 시간이 함께 녹아있는 나 자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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