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차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내가 사는 곳은 중동 아랍에미리트(UAE)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미스 알렌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에 산다고 하면 가끔 무슬림이나 예맨 또는 이라크가 나오는 뉴스를 떠올리며 "살기 위험한 것 아니야? 무섭지 않아?라는 반응을 마주하곤 하는데 두바이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서 두바이가 있는 나라라고 말하면 만수르를 떠올리며 "아~!! 석유 나오는 나라 부자나라"라는 반응으로 바뀐다.
7개의 토후국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자국민의 비율이 30%도 안되고, 나머지는 우리와 같은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국민을 우리는 에미라티 또는 로컬이라고 부르는데, 나라에서 시행하는 정책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자국민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에미라티들이 얼마나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지 알 수 있다.
전기세와 수도세 조차, UAE 국민을 위한 요금제와 외국인 요금제가 따로 있고, 외국인은 2배가 넘는 금액으로 사용해야 한다. 관공서에 일 처리하러 갔을 때도 줄 안 서고 쓱 앞으로 가면 로컬이구나 생각할 정도.
실제로 많은 로컬들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금액으로 생활하거나 은행, 관공서 등에서 관리자 급으로 일하며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으며 생활을 유지한다. 일주일에 3-4일 정도만 일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친구들을 봤을 땐 그랬다.)
내가 생활하면서 만날 수 있는 일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마트 계산원, 판매직원, 식당 종업원, 주유소 직원, 호텔리어 같은 일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들의 월급은 청소부는 700디람(약 25만원), 캐셔는 1500 디람(약 50만 원)부터 경력이나 능력, 또는 국적에 따라 결정된다.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직업(병원, 교육직 등)은 10,000에서 15,000 디람 혹은 그 이상으로 급여가 훌쩍 뛴다.
유럽인 혹은 아메리칸이나 한국인들은 직접 사업을 하거나 외국계 기업 또는 파견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급여는 더 높은 수준으로 시작된다. 소득이 10배에서 30배정도 차이나는 것은 예삿일이다.
실제로 내가 생활하면서는 로컬이라고 불리는 그들과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고, 다행히도 에미라티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서 차별보다는 오히려 우대를 많이 받았는데, 예를 들어 노동자들 줄이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 가운데 나를 콕 집어 빠른 창구로 빼준다거나 한국인이냐고 물어오며 한국 정말 좋아한다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기도 하고, 과실 여부가 애매한 접촉사고가 났을 때 나온 경찰이 상대편 직원을 꾸짖으며 내 편을 들어줄 때도 있었다.(다행히 로컬과의 접촉사고는 아니었다.)
의외로 차별은 그들이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즉 낮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주로 받았다.
내가 먼저 식당에 들어섰는데 나는 무시하고 내 뒤에 온 서양인들 테이블로 쪼르르 달려간다거나, 일 년을 넘게 다니면서 나는 보는 듯 만 듯하던 스파 직원이 서양인들과 로컬들에게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뭐라고 하기도 뭐하고 느끼기에는 불쾌한 생활 속 차별들
그래도 대놓고 차별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참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내 영어는 빠르게 늘어갔다.
하루는 아이 학교에서 아이가 친구와 몸싸움이 있었는데, 요르단인 선생님이 내 아이가 문제가 많다며 오라고 해서 갔더니 선생님이 철저하게 상대편 아이의 입장에서 나에게 따지고 있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둘 다 똑같이 혼내고 화해를 해야지 하는 의문과, 학부모를 불러다 놓고 마치 학생한테 하듯 혼내고 있는 와중에
"그럼 그 친구와 그 부모한테도 이렇게 똑같이 지도할 겁니까?"라고 했더니 돌아온 황당한 답
"He is 로컬"
저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비록 지금 남의 나라에 와서 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언제나 그리운 내 나라가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나와 상관없지만, 그 때문에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면 화가 난다.
결국 대놓고 학생 차별하던 그 선생은 그 해를 끝으로 학교에서 떠났다.
아랍에서 당한 차별에 관한 나의 경험은 알렌이 겪을 일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