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 내가 지키기
미스 알렌은 매 달 한 번씩 두바이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모아둔 돈을 우간다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나 친척을 만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한다.
짧디 짧은 1박 2일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들을 하고 돌아오는데, 주로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집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2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되도록 지나는 길에 내려주거나 데리러 가지만, 그럴 수 없을 땐 스스로 택시를 타고 오는데
어느 날 두바이에서 돌아온 그녀가 계속 밖을 쳐다보고 초조하게 집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택시기사가 잔돈이 없다며 바꿔서 가져다준다고 하고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 듣자마자 느꼈다.
아, 당했구나.
다행히도 그녀는 택시기사의 차 번호를 메모해뒀고, 더 기다릴 것 없이 택시회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고객센터에서 택시기사가 돈을 고객센터에 맡겨뒀으니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거만한 태도로,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면
그녀가 터미널부터 집까지 올 때 지불하는 택시비는 25~27 디르함(약 9000) 원 정도이다. 그녀는 잔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100 디람짜리를 지불했는데 잔돈에 해당하는 70 디람 정도를 받기 위해 다시 터미널을 왕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알렌이 쉬는 날은 금요일인데, 택시회사도 금요일에는 쉰다며 다른 날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방에서 혼자 입씨름하고 있는 알렌에게 모든 상황을 듣고 난 나는 고민했다. 이 부당한 상황 앞에서 그녀는 거의 포기하는 것 같았다.
며칠 후, 해야 할 일이 금방 끝나던 날
미스 알렌에게 외쳤다.
"택시회사로 가자!"
우리는 일단 택시회사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다.
직원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직원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소파에 앉아 얼마간 기다리자 두 명의 여자가 왔다. 두 직원 중 키가 작은 여자가 다짜고짜 이야기했다.
"왜 여기에 있어요. 사무실은 여기가 아니에요. 사무실로 갑시다."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알렌이 자기랑 통화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무조건 회사 오피스로 가자는 그 무례한 태도를 보고 있다가 결국 소파에서 일어났다.
한국인 기준으로 결코 큰 키가 아니지만 나에게 떽떽거리고 있는 필리핀 여자보다 훨씬 컸다.
단지 내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기선제압을 당한 듯했다.
"당신이 내 직원이랑 통화한 사람입니까?"
나는 평소에 미스 알렌을 소개할 때 메이드 대신 스텝으로 소개하고는 한다. 그녀는 단순히 메이드 업무만 하는 게 아니고, 내 비서이기도 하고 아이들 선생님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칭으로라도 높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직원]이라는 말에 더 힘주어 이야기했다.
"내 직원 말로는 택시기사가 잔돈을 안 주고 가버렸는데, 너네가 직접 와서 받아가라고 했다면서? 상황이 좀 이상하지 않니? 나는 그 택시기사의 사과를 원해. 그래서 지금 너희 오피스로 우리가 자리를 옮겨야 할까?"(영어 영어)
사과는커녕 고압적인 태도로 내려다보던 여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태도가 급 친절해졌다.
아마도 앞서 만났던 직원들은 알렌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주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직원이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매니저를 만나고 싶습니까?"
나는 흔쾌히 매니저를 만나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어느 방으로 안내되어 어떤 에미라티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책임자: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 내 직원이 택시를 이용했는데, 택시기사가 잔돈을 돌려주겠다고 하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객센터에 연락하니 직접 돈을 받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책임자: 택시 기사가 누군지 알고 계신가요?
나: 네, 여기 차량 번호와 시간입니다. 고객센터에서 누군지 알 거예요.
책임자가 전화를 걸었고, 다른 아랍 사람이 왔다. 아마 택시회사의 책임자인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내가 온 건 택시회사가 아니라 상위기관, 교통을 총괄하는 관공서로 바로 왔다는 것을.
그래서 아까 여자 직원들이 와서 자꾸 여기서 자리를 옮겨 택시회사 내에서 끝내고 싶어 했던 거였구나.
택시회사 책임자 말로는 택시기사는 지금 오는 중이라며,
택시기사편에서 들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변명에 따르면 잔돈을 바꿔서 다시 돌아왔지만 알렌이 없어서 잔돈을 줄 수 없었다고 했단다.
알렌은 그 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택시기사는 돈을 돌려주러 오지 않았고, 내 생각에는 애초에 올 생각도 없었다고 봤다.
나는 미스 알렌이 처음 택시에 탈 때부터 "100 디람 짜리밖에 없는데 잔돈이 있습니까?" 하고 확인을 했었다는 것을 재차 이야기했고 그때 그는 "노 프라블럼"이라며 출발했다고 했다.
교통국 책임자와 택시회사 책임자는 택시회사와 우리 사이에서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고민해야 했다.
거기서 결정적으로 나는 그 날 알렌이 택시를 탄 장소가 바로 이곳 터미널이라고 밝혔다.
교통국 책임자의 얼굴에서 확신이 비쳤다. 터미널은 버스뿐만 아니라 택시회사의 시작점이자 종점이기 때문에 운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잔돈 없이 출발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판세는 우리 쪽으로 기울어졌고, 나는 터미널에서 출발한 알렌이 잔돈을 받기 위해 다시 출발점인 터미널을 왕복해야 하는 상황을 요구하는 택시회사 고객센터의 황당한 갑질에 항의했고 택시기사에 대한 정당한 징계를 요구했다.
헐레벌떡 택시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우리 쪽을 쏘아보더니 그동안 자기가 생각해 둔 변명을 여러 책임자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났고 , 우리는 택시기사의 사과와 잔돈 73 디람을 요구했다.
책임자들이 사과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직접 와서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73 디람(약 23000원) 어쩌면 그냥 잊어버릴 수 있는 돈이겠지만 누군가에는 하루 품삯보다 큰돈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돈을 위해 그녀를 위해 직접 움직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통국 책임자가 알렌에게 돈을 돌려주며, 너는 정말 좋은 오너를 만났다고 이야기할 때 느꼈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느꼈다. 만약 나 없이 알렌이 혼자 왔다면, 그녀는 과연 부당함에 대해 외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의 피해자는 알렌이었지만, 그 누구도 알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도 그 점을 깨닫게 된 듯했다.
73 디람을 손에 꼭 쥔 알렌은 차에 타자마자 나에게 엄지를 척! 내밀며
"슈퍼우먼, 땡큐"를 외쳤다.
내 알렌, 내가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