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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l 27. 2020

#4 언어의 장벽

영어에 대한 열등감

미쓰알렌이랑 함께한 초반 우리의 가장 큰 난관은 언어였다.

한국어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데, 해외에 나와 살다 보니 언어가 가장 큰 장애물이자 콤플렉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언어가 여러 개다 보니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교육도 영어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다 보니
우간다, 특히 수도인 캄팔라에서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부담이 없다.

더군다나 알렌은 영어 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용하는 어휘부터가 남달랐다.


Hello
Hi
I'm fine, thank you. and you?


학교 때 이후 영어에서 완벽하게 손을 떼고 기초 수준으로 아랍에미리트에 입문한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용기와 자신감만은 가득했다. 간단한 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생활해가면서 알게 모르게 늘어가는 눈치 영어와 번역기의 발달로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까지는... 그랬다.


알렌이 집에 온 이후 나는 주로 설명을 해야 했고, 알렌은 이해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 친구가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뭔가를 부탁할 때마다 I don't get you? 를 남발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작아졌다.

나름 스피킹은 안되지만 리스닝 파트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녀가 사용하는 고급 어휘 표현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가끔은 일부러 이러나 싶고 불만이 쌓여갔다.

뭔가 작은 것 하나 설명할 때마다 번역기를 꺼내야 해서 부끄럽고 번거로웠다.


한국인 정서상 대놓고 말은 못 하고 할 말이 있을 때마다 빙 둘러서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서로 오해가 커져가고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 스타일대로 내가 지시한 대로 일을 해주기 원했고, 알렌은 납득이 되어야 움직이는 성격이었다.



우리의 언쟁의 예를 들어

청소를 끝마쳤는데 바닥을 닦지 않아서, 왜 바닥 청소를 안 했느냐고 물으니 깨끗하다고 한다.

                                                                                    ↓

한국인들은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청소할 때는 청소기 외에 물걸레질도 해야 청소를 끝난 거라고 하니 이틀에 한번 닦겠다고 한다.

                                                                                    ↓

매일 닦아야 한다고 하니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

결국 내가 직접 대걸레를 잡고 온 집안을 닦고 나서 대걸레를 넘겨주며
온 집안을 닦는데 겨우 10분 걸린다고 타박(?)한다.


내가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줄 것을 요구할 때마다 그녀는 고치겠다는 말보다는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였다. 밥 먹는 시간부터 일하는 것 하나하나 부딪히기 시작하고 좋은 첫인상으로 시작한 우리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다 보니 우리 사이의 오해는 풀릴 줄을 몰랐다.

대화할 때도 상대방의 표정과 감정을 살피는 우리 정서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듯한 뚱한 표정은 마치 나와 대화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집 보면 다들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따라주는 것 같은데, 자꾸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우리 집에 일하러 온 이 친구가 그저 부담스럽고 원체 껄끄러운 이야기는 하기 싫어 참고 말지 하는 성격이라 걸핏하면 이것저것 불만을 털어놓는 나에게만 뭐라고 했다.

쌓이고 쌓이다 결국 부부싸움이 대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미쓰알렌과 담판을 짓기로 하고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나: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어때?

알렌 : 나는 좋아

나 : 너는 우리 집에 있고 싶어?

알렌 : 응 나는 있고 싶어.

나 : 그런데 나는 솔직히 지금 너를 계속 고용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알렌 : (충격 받음)

나: 나는 나름대로 지금 너에게 그 어느 다른 집보다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고 생각해. 급여도 아이들은 가르치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 도우미 평균 급여의 130%를 지급하고 있고, 인턴쉽이 끝나면 네가 원하는 대로 150%를 줄 계획이야. 하지만 나는 지금 헷갈려. 나는 너에게 이렇게 다른 도우미들 보다 높은 급여를 지급하면서도 만족스럽지 않아. 너는 나에게 까다로운 직원이야. 나는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보다는 동생처럼 나를 따라주는 직원을 원해.

 

나는 그동안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속시원히 대놓고 이야기했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 대화할 때 짓는 표정에 따른 신경 쓰임, 내가 무언가를 지시할 때마다 일일이 설득하고 설명해야 하는 부분, 한국인의 정서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에게 지시하는 것에 대한 껄끄러움.


비자를 준비하려면 최소한 한 달 정도 여유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남은 한 달 안에 내가 왜 그녀를 고용해야 하는지 증명해보라고 했다.


다소 충격받은 표정의 미쓰알렌이 방에 들어가고 한참 뒤 방 안에서 끅 끅 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달래주려고 들어갔더니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큭큭 웃는 소리였다.

무슨 일 있냐는 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길래 머쓱해진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슬그머니 문을 닫아주었다.


휴 그래 밝아서 좋다.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 그건 정말 인정!


알렌의 태도(?)에 대한 갈등은 며칠 뒤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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